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노무현의 검찰, 박근혜의 검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해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9일 귀가했다. ‘친박’ 핵심 중 한 명인 그에게는 대선자금 등 2억원 수수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청사에 들어서는 홍 의원 모습을 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대선자금 수사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검찰 취재를 담당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대검 중수부에 불려와 조사를 받고 있던 시간에 검찰 핵심 간부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중앙일보 기사DB를 찾아보니 2003년 12월 11일이다. 이 간부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불쑥 물었다.

 “이광재 (구속)영장(청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아직 결심을 못한 것 같았다.

 “(불법자금)1억 말고 더 나온 게 있나요?”

 “아니, 돈 더 나온 건 아직 없지.”

 “그렇다면 오버(over) 같은데요.”

 “오보라고?”

 “오버요, 오버. 오보가 아니고 오버.”

 “아, 오버…. 국회서 위증한 것도 있긴 한데.”

 “그래도 오버 같은데요? 누가 국회에서 ‘나 돈 받았다’고 말하겠어요.”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구속 수사를 하고 싶다는 속내가 읽혔다. 내 말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 전 실장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몇 시간 뒤 이번엔 ‘왼팔’ 안희정 충남지사가 불려 나왔다. 검찰은 내리 사흘을 조사하더니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판사의 구속 여부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또 다른 검찰 간부와 함께 있었다. 그는 초조해 보였다. 그때 법원을 담당하는 후배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금 안 지사에 대한 영장이 발부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간부는 반색을 하더니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전화 보고를 했다.

 “총장님, 영장 발부됐습니다. 예, 예. 차질 없이 마무리 하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정권의 서슬이 시퍼럴 때지만 당시 검찰은 대통령의 양팔을 비틀다 못해 아예 뽑아낼 태세였다. 검찰이 이때만큼 국민의 성원을 받은 적이 또 있나 싶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도마에 오른 사람이 대통령 측근들이라는 점에선 그때와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판이하다. 수사의 단초가 다르니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수사가 곧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래도 개운치는 않다. 그가 목숨을 끊기 직전 남긴 ‘고발 메모’에 나온 이름을 순서대로 보면 1.허태열 2.홍문종 3.유정복 4.홍준표 5.부산시장 6.김기춘 7.이병기 8.이완구다.

 이 중 비주류 검사 출신인 4번과 경찰 출신인 8번만 집중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공교롭게도 나머지 1·2·3·5·6·7번은 친박 핵심 인사다. 성 전 회장이 세상과 작별을 앞두고 미운 사람들을 해코지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돈 준 사람과 섞어 적은 것일까.

 이 괴이한 상황에 검찰이 답을 내놓지 못하면 정권의 사랑은 받을지 몰라도 국민의 지지는 얻기 어려울 거다.

강주안 디지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