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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칼럼

권력의 공포 제압 실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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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대기자

메르스는 공포다. 공포는 감염된다. 두려움의 확산은 신속하다. 그 속도는 바이러스 전파보다 빠르다. 공포는 격리되지 않는다. 이웃에 옮기려 한다. 나 홀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두려움은 공유된다. 집단으로 번진다.

 메르스는 과잉 공포다. 완치된 환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증언은 과장된 불안감을 폭로한다. “독감보다 약한 증상이었다.” 의사인 그는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70대 후반 할머니도 퇴원했다.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들의 경험담은 파괴력을 갖는다. 메르스 공포에 안달하는 비관론자들을 진정시킨다.

 메르스 풍경은 기이하다. 2차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 앞 택시들은 뜸하다. 장례식장은 차지 않는다. 모임과 행사들이 취소됐다. 야구장 관중석도 썰렁하다. 9일 세계 과학기자대회가 강남 코엑스에서 열렸다. 대회 진행은 순조롭다. 외국 기자들(400여 명) 거의가 한국에 왔다. 그들은 서울의 메르스 풍광을 일축한다.

 공포의 확산은 정부의 역량 부족 탓이다. 신종질환은 공포를 예비한다. 그 대응 무기는 투명성이다. 사태 초기 정부는 메르스 정보를 쥐고 있었다. 관료의 타성은 독점과 폐쇄다. 국민은 메르스에 예민해졌다. 보건당국자들은 사실 공급을 등한히 했다. 대중의 정보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괴담은 활개를 쳤다. 얼치기 평론가들이 설쳤다. 불안은 공포로 재구성됐다. 메르스에 얽힌 병원 명단이 뒤늦게 발표됐다. 정부는 정보 유통 시장에서 패배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휴업은 계속된다. 그 시작은 대치동 엄마들의 작품이다. 그것은 관료적 정보 통제에 대한 저항이다. 대치동 엄마들은 정보전에 익숙하다. 자녀 입시 문제로 단련됐다. 엄마들의 카톡방은 달구어졌다. 그 속에 사실과 소문, 진실과 괴담이 혼재됐다. 불안 심리는 아우성이 됐다. 압력으로 작동했다. 학교는 교실을 닫았다.

 감염 전문가들 대부분의 시각은 같다. 수업중단을 과민한 대처로 규정한다. 메르스 특성은 병원 내부 감염이다. 병원 밖 동네에서 퍼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믿음을 잃었다. 대치동은 여당 강세 지역이다. 카톡방의 궐기는 정권 불신이다. 박근혜 정부에겐 뼈아픈 현상이다.

 공직자는 파격을 싫어한다. 선제적 조치는 관료 취향과 맞지 않는다. 세월호 교훈은 적용되지 않는다. 낡은 매뉴얼을 고집한다. 공직자들은 믿는 구석이 있어야 달라진다. 정책 실수에 책임져줄 윗선 기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세적인 순발력을 발휘할 조건이다. 청와대 참모들은 관료 체질을 안다. 하지만 범(汎)정부 대책기구를 만드는 데 게을렀다.

 박 대통령이 메르스 현장에 나선 것은 5일이다. 국립 중앙의료원 방문 때다. 메르스 사태 속 첫 등장이다. 국민이 원하는 메시지는 이런 내용이다. “대통령인 내가 앞장서고 있다. 빠른 퇴치를 자신한다.” 위기관리는 말의 힘이다. 리더십 요체는 자신감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선명하고 쉬운 언어가 동원돼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공포의 제압에 맞췄어야 했다. 낙관과 확신을 생산해야 한다. 대중의 고통에 동참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발언의 초점은 흩어졌다. 다른 데로 이동했다. “중앙부처와 지자체 간에 긴밀한 협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심야 회견을 질타하는 인상을 줬다. 박 시장의 발언은 정부의 무기력을 파고든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날 언어는 표적을 놓쳤다. 청와대가 소개한 대통령 말은 백화점식 나열이었다. 집중과 우선순위를 갖추지 못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미숙했다. 대통령 메시지의 경중 조절에 실패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의 진정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여야 논쟁거리만을 제공했다. 대다수 국민은 만족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다시 강조해야 했다. “국민이 합심하면 메르스 사태는 조기 종료할 수 있다.”(9일 국무회의) 권력의 난조는 이어진다.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연기됐다.

 나라의 일은 사고의 연속이다. 위기는 상시적이다. 과거에 그랬다. 미래도 비슷할 것이다. 그 예방이 권력의 역량이다. 최소화하는 게 정권 실력이다. 그 속에서 국정 성취와 업적이 쌓인다. 한국 사회는 소란스럽고 역동적이다. 대통령 단임제의 속성은 소란 속 운영이다. 시스템과 매뉴얼로만 위기 극복은 어렵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역동과 소란을 조율할 사람이 필요하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의 말은 실감난다. 그는 “내각에 위기를 관리할 인물이 없다. 제대로 일할 인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메르스가 확산됐다. 이것이 근본 문제”라고 했다. 그는 핵심을 찌른다. “대통령도 이 부분을 아셔야 한다.” 친박(親朴) 원로의 고언이다. 박 대통령의 반응은 무엇인가. 메르스 사태 속 국민적 궁금증이다.

박보균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