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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오뉴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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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고 했건만 때아닌 독감(메르스)으로 너도나도 마스크 차림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 속담이 있긴 하지만 낙타가 얼마나 한을 품었기에 이 더위에도 독감 한파가 전국을 얼어붙게 하는지 모르겠다.

 ‘오뉴월’은 5월과 6월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원래 오뉴월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그리 덥지 않은 게 정상이지만 지구 온난화 탓인지 요즘은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들 정도다. “오뉴월 더위에 염소 뿔이 물러 빠진다”는 속담이 딱 맞는 듯하다. 속담에서처럼 오월과 육월을 합쳐 ‘오뉴월’이라 하지 않고 ‘오육월’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한자어는 본음으로도, 속음으로도 발음한다. 속음은 본음과 달리 일반 사회에서 널리 쓰는 음을 뜻한다. 육월(六月)을 ‘유월’로, 오육월(五六月)을 ‘오뉴월’로, 십월(十月)을 ‘시월’로, 초팔일(初八日)을 ‘초파일’로 읽는 것이 대표적이다. 소리를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즉 발음하기 어려운 소리에 어떤 소리를 더하거나 바꾸어 발음하기 쉽고 듣기 부드러운 소리가 되게 하는 음운현상이다.

 이를 활음조(滑音調) 또는 유포니(euphony) 현상이라고 한다. 모음 조화나 자음 동화, 모음 충돌을 피하기 위한 매개 자음 삽입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맞춤법(제6장)은 속음으로 읽히는 것은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반드시 유월, 오뉴월, 시월, 초파일 등으로 써야 한다.

 지이산(智異山)을 ‘지리산’으로, 한나산(漢拏山)을 ‘한라산’으로 적는 것도 이런 현상 때문이다. 보리(菩提), 보시(布施), 도량(道場:도를 얻으려고 수행하는 곳)도 본음과 달리 소리 나는 것들이다.

 이 밖에도 목재(木材)-모과(木瓜), 분노(憤怒)-희로애락(喜怒哀樂), 승낙(承諾)-수락(受諾), 토론(討論)-의논(議論), 안녕(安寧)-의령(宜寧)처럼 같은 한자어이지만 달리 읽히는 것이 많다.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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