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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서, 김정은 앞질렀다 깜짝 놀라 네 발 뒷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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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북한의 ‘2인자’로 꼽히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최근 ‘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자리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했다. 행사장에서 그는 갑자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무심코 김정은보다 반보 앞서 나갔을 찰나였다. 그는 황급히 네 걸음을 뒷걸음질 쳐서 김정은 뒤로 이동했다.

 이상은 7일 북한 관영 방송인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된 기록영화 속의 장면들이다. 기록영화는 ‘김정은 인민군대 사업 현지지도 주체 104(2015년) 4-5’라는 제목의 한 시간짜리 분량이다.

 영상 속엔 김정은에게 ‘불경(不敬)’으로 보이는 것에 대한 북한 군 수뇌부의 공포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황병서 같은 실세도 김정은보다 앞서 걷고 있음을 알아채곤 황급히 뒷걸음질쳐야 했을 정도다. 실제로 최근 북한에서 숙청된 거물급 인사들은 모두 ‘불경죄’와 상관이 있었다.

 2013년까지 2인자 대접을 받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처형 전 김정은 앞에서 박수를 건성건성 치거나 뒷짐을 지고 짝다리를 짚다가 결국 ‘반당 종파분자’로 몰렸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도 김정은이 주재한 회의 석상에서 꾸벅꾸벅 조는 듯한 모습이 노동신문에 실린 뒤 숙청당했다는 분석이 유력하게 제기된 상태다.

 그간 조선중앙TV는 현영철 숙청 및 처형설이 제기된 지난달 13일 이후에도 한동안 현영철의 모습을 기록영화에 그대로 내보냈다. 그러나 지난 4일 방영한 새 기록영화엔 현영철이 참석했던 행사 전체가 통째로 편집돼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부 당국자는 “현영철 ‘흔적 지우기’ 작업이 진행 중임이 드러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교도(共同)통신은 2012년 7월 당시 북한군 최고 실세였던 이영호 총참모장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 김정은과 같은 줄에 섰다가 눈 밖에 나 숙청당한 것”이란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영호 숙청 이후 시점인 그해 9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땐 모든 간부가 김정은보다 한 걸음 뒤에서 참배한 것도 이런 분석이 사실일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날 기록영화를 공개한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기록영화 공개는 2인자까지 이렇게 조심하고 있으니 새기라는 것”이라며 “북한 지도층에 대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남대 김근식(북한학) 교수는 “김 위원장이 주민에겐 감성적 스킨십을 하면서 지도층엔 공포정치를 하는 독재자들의 패턴을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설명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하얀 원)이 7일 공개된 기록영화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수행하던 중(사진 1) 김 위원장보다 앞서자(사진 2) 황급히 네 걸음 물러서고 있다(사진 3). 황 총정치국장은 김 위원장이 자신보다 앞에 서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소 지었다. [조선중앙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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