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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엘리엇의 노림수는

중앙일보

입력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최근 삼성물산 지분을 7.12%로 끌어올린 뒤 공개적으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했다. 삼성의 합병 강행을 저지할 엘리엇의 무기는 ‘주식매수청구권’이다. 그러나 겉만 보면 엘리엇의 합병 반대는 손해 보는 장사다.

엘리엇이 3일 장내 매수로 사들인 삼성물산 지분의 평균 매입가격은 주당 6만3560원이다. 이는 주식매수청구권 가격(5만7234원)보다 주당 6326원이나 비싸다. 엘리엇이 삼성에 주식을 되판다면 3일 매입한 주식으로만 215억원 정도 손해를 본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 속성상 이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하지도 않을 일이다.

그렇다면 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지분을 매집했을까. 삼성물산은 삼성 지배구조의 약한 고리다. 엘리엇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삼성물산의 특수관계인 지분은 삼성SDI(7.18%), 삼성화재(4.65%) 등을 합쳐 13.99%에 불과하다. 단일 최대주주로는 국민연금(9.98%)이 1위다. 반면 외국인 지분은 33%를 넘어선다. 특히 4일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자 외국인의 삼성물산 보유 비중이 하루 새 32.11%에서 33.08%로 높아졌다. 엘리엇의 지분은 7.12%로 단일 주주로는 3위에 불과하지만 외국계 우호지분을 규합한다면 양상이 사뭇 달라진다는 얘기다.

엘리엇은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며 외국인 여론 몰이에 나섰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보유한 계열사 15곳의 지분 가치 총액은 삼성물산 시가총액보다 많다. 상장사는 삼성전자(지분율 4.1%), 제일모직(1.4%), 삼성SDS(22.6%) 등 9개사, 비상장사는 삼성라이온즈(7.5%) 등 6개사다.

삼성전자 지분 8조986억원어치를 포함해 상장사 지분만 합쳐도 13조7901억원에 달한다. 삼성물산 시가총액(11조8882억)을 2조원 가까이 웃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보유 지분 가치보다 시가총액이 낮은 이유를 따지며 세 규합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엘리엇이 철저히 준비된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엘리엇은 이미 주주제안을 통해 현물배당이 가능하도록 삼성물산 정관 변경을 요구했다. 이렇게 정관을 고치면 주주는 배당으로 삼성물산이 보유한 주식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있는 삼성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계열사 지분을 줄일 순 없기 때문이다.

만약 7월 17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에서 참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발행 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제일모직ㆍ삼성물산 합병은 무산될 수 있다. 또 7월 17일부터 8월 6일까지 예정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에 주식매수 청구액이 1조5000억원을 넘어서면 합병 계약을 해제하는 조항도 있다. 이는 삼성물산 지분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외국인’의 속성이 다양해 이들이 모두 통일되고 조직화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엘리엇이 논란을 일으켜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내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엘리엇이 4일 공격에 나서자 삼성물산의 주가는 이틀 동안 9~10%씩 급등했다. 이 기간 엘리엇의 보유 지분 가치도 6897억원에서 8022억원으로 1100억원 이상 뛰었다. 여론몰이로 삼성을 압박해 삼성전자 주식 같은 현물을 배당으로 받는 방안을 추진하다 여의치 않으면 보유 주식을 모두 팔아 시세차익을 남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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