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허영만의 ‘2등 정신’

중앙일보

입력 2015.06.07 16:22

업데이트 2015.06.08 09:46

2012년 7월 11일, 만화가 허영만 선생의 작업실, 첫 만남이었다. 당시 드라마 ‘각시탈’이 화제였다. 원작자로서의 인터뷰, 한결같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비결을 물었다.

“정상은 무슨”이라며 운을 뗐다. 항상 2등이었다고 했다.

“데뷔하고 출판사 사장한테 맨날 들은 말이 ‘이번에도 이상무의 독고탁한테 아슬아슬하게 졌다’는 얘기였다. 독고탁 인기가 좀 떨어지나 했더니 그 다음은 이현세가 1등인 게다. 1등 욕심내지 말고 5등 안에만 들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만화계의 삼성’이란 얘기를 듣기도 했던 그가 스스로를 ‘만년 2등’이라 규정한 게다.

그의 작업책상 위에 붙여져 있는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로 죽지 않겠어요. 나는 작가로 죽겠습니다. 원고지 위에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최인호’

소설가 최인호의 유고집 『눈물』에서 따온 문구, 만화가로서 허영만 선생의 다짐이라 여겨졌다.

인터뷰 말미에 미술대학에 가지 못한 한은 없는지 조심스럽게 물어 봤다.

주저 없이 답했다.
“처음엔 미술대학을 못 간 게 한이었다. 못 간 대학 4년의 시간, 12년처럼 썼다.
하지만 친구에게서 들은 ‘고등학교만 나온 놈’이란 말, 가슴에 맺혔다.
서른세 살까지는 그랬다. 부쩍 크는 아이를 보며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살아갈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지금껏 만화에만 매달렸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왔으니 더 이상 부끄러울 것도 없다”고 했다. 당당했다.

2014년 4월 2일 두 번째 인터뷰, 40년 만화 인생을 되짚어 보는 자리였다.

먼저 그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1974년 『집을 찾아서』를 시작으로 『각시탈』 『제7구단』 『오! 한강』 『날아라 슈퍼보드』 『미스터Q』 『비트』 『타짜』 『식객』 『꼴』 등을 그려온 손이다. 이 손으로 그린 게 자그마치 40년을 넘겼다.

작업실이 썰렁했다. 예전과 달리 문하생들 없이 혼자였다. 그들과 헤어지며 그린 2014년 3월 15일의 만화일기를 보여줬다.

‘문하생과 이별주를 마셨다. 이제부터는 혼자 작업할 작정이다’로 시작해 ‘슬픈 날이었다’로 끝을 맺었다. 그날의 일기 후 18일 만의 인터뷰였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의보감’과 ‘식객2’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해 왔지만 수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연재를 중단했다. 조회수는 많았지만 돈을 내고 보는 사람이 없었다. 화실 운영에 한계가 왔다”고 했다.
이어서 덧붙였다.
“내 만화가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소재를 찾는 중이다. 종전의 진부한 이야기와 표현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림에 변화를 줄 것이다.”

만화계의 거장이 새로운 변화를 이야기했다. 이는 새로운 시작이기 보다는 도전일 터.

그의 가방을 뒤졌다. 스케치북ㆍ만화일기장ㆍ볼펜ㆍ샤프ㆍ매직ㆍ만년필ㆍ돋보기 등이 들어있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특이하게도 율무씨와 반창고가 눈에 띄었다.

용도를 물었다. 양말을 벗고 발을 책상 위에 올려 사용법을 보여줬다.
“『허허 동의보감』을 작업하며 배운 건데 용천혈에 껍질을 까지 않은 율무씨를 붙이고 다닌다. 평소 급한 성질을 누그러뜨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허영만 선생의 부드러운 미소는 언제봐도 매력적이다.

예전에는 별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는데 요즘은 폴 뉴먼이라며 웃었다. 그의 발바닥에 붙여진 율무씨가 자꾸 떠오른다. 부드러운 미소의 비밀, 율무씨일까?

작업실로 안내했다. 여전히 책상과 벽에 메모 쪽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벽에 붙은 일과표엔 5시 기상, 오후 1시까지 작업이다. 점심ㆍ산책ㆍ낮잠 후 오후 작업이 이어진다.
‘경쟁력은 책상에서 나온다’고 문하생들에게 늘 강조했다고 했다.

작업실 곳곳에 붙은 메모 쪽지들. ‘망치고 실수하고 깨질 때 한걸음 발전한다!’, ‘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날고 기는 놈도 계속하는 놈한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의 삶이 보인다.

2015년 4월 28일, 세 번째 만났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다.

‘허영만展 창작의 비밀’(4월 29일~ 7월 19일)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이 전시 소식을 듣고 사실 적잖이 놀랐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인 예술의 전당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한국 만화가 초대전, 그 주인공이 허영만 선생이었다.
스스로를 ‘만년 2등’으로 규정했었다. 5등 안에만 들자는 생각으로 살았다 했다.
그런데 예술의 전당이 국내만화가 중 처음으로 그에게 공간을 내준 게다.
‘날고 기는 놈도 계속하는 놈한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그의 메모가 현실이 된 셈이다.

‘필자가 상상한 필자의 최후 모습’ 이라는 만화일기다.

‘허영만 선생이 작업도중 숨졌다. 향년 107세, 타살 흔적은 없고 코피가 1cm정도 났을 뿐 평소와 다름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다.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인생이었다’고 적혀 있다.

2012년 그의 책상에서 봤던 자필 쪽지가 스친다.
‘환자로 죽지 않겠어요. 나는 작가로 죽겠습니다. 원고지 위에서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는 최인호 선생의 유고집 문구다.

그가 상상하는 최후 모습, 그것이야 말로 만화가로서 최고의 죽음이 아니겠냐고 했다.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그의 인생은 적어도 2등은 아닐 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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