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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메르스 수출국’이란 오명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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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31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뿐 아니다. 40대 한국인 남성이 중국 출장 중 환자로 판명됨에 따라, 중국에서는 우리나라가 ‘메르스 수출국’이라는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무책임한 한국 정부와 한국인 환자로 인해 반한 감정으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중국인들의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을 꼬집어오던 우리가 되레 할 말이 없어진 셈이다. 최근 중국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4%가 “질병을 숨기고 중국에 입국한 것은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고 답했다.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도 83%가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 해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급기야 홍콩 당국은 “한국인 환자가 공항 입국심사 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기소를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강경한 긴급처방도 내놓았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한 관리 강화다. 이에 따라 한국발 항공기는 공항 내 지정구역에서만 착륙이 허용된다. 여행객들도 지정된 게이트만을 이용할 수 있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당연한 조치로 메르스 초기 방역에 실패한 우리로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메르스의 여파는 국가 신인도 하락이라는 이미지 손실에만 그치지 않고 있다. 당장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감하고 있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이달 들어 2만 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행을 포기했다. 가장 비중이 큰 유커(중국인 관광객)뿐 아니다. 한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동남아에도 영향이 미치고 있다. 5일에는 태국인 단체 관광객 64명이 여행을 취소했다. 한류의 발원지인 한국이 동아시아의 메르스 전파국으로 그 위상이 전락하고 있다.

대만에서는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 단계를 높였다. 현지에선 다음달 3일 개막하는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 불참 얘기까지 흘러 나온다. 일본 축구협회도 15세 이하 대표팀(U-15)의 한국 방문을 금지시켰다.

동물원 외엔 낙타가 한 마리도 없는 우리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세계 3위의 메르스 발생국이라는 오명을 톡톡히 뒤집어 쓰고 있다. 4,5위는 각각 요르단과 카타르다. 상위 5위권 국가 중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모두 중동 국가들이다. 다행히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의 메르스 사태를 주시하겠다”면서도 “아직 여행이나 국경통제 조치는 필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메르스 발생 초기 우리 보건당국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환경이 중동과 다르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메르스 사태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보다는 WHO 사무총장을 지낸 고(故) 이종욱 박사의 말을 되새겨볼 만하다. “새로운 전염병은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 나중에 희생자가 예상보다 적어 욕을 먹더라도 지금 사람들에게 그 위험성을 널리 알려 대비하기 위해서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국가와 정치 지도자는 뒷감당을 하지 못할 것이다.”

최익재 국제부문 기자 i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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