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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고로 가족 잃은 뒤 인간 증발에 대해 깊은 고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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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17면

10월 14일. 전 세계 인구의 2%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식탁에 둘러 앉아 함께 식사를 하던 아들이, 옆에 앉아 같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깔깔대던 친구가 일순간에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남겨진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성경이 예고한 휴거라고 하기엔 그 대상 집단이 너무 무작위였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 무신론자는 물론 심지어는 조로아스터교도도 섞여 있었다. 흔히 그러하듯 떠난 사람들은 실제보다 좀 더 아름답고 훌륭했던 양 포장됐지만 모두가 그런 것 역시 아니었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성스럽지도 않은 증발 덕에 세상은 혼돈의 도가니에 빠졌다.

『레프트오버』의 작가 톰 페로타

톰 페로타(54)의 소설 『레프트오버(The Leftoevers)』(북플라자)는 문자 그대로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케빈 가비의 집은 가족 중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는다. 시장인 케빈은 사람들을 슬픔으로부터 끌어내기 위해 대규모 행사를 준비하지만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아내 로리는 말 대신 침묵하는 ‘남겨진 죄인들’의 단체 생활을 택했다. 아들 톰은 대학을 그만두고 사이비종교 ‘신성한 웨인’의 추종자로 따라나서고, 모범생이었던 딸 질은 학교 대신 대마초와 섹스로 얼룩진 삶을 걸어간다. 균열이 빚은 파장이 엄청났던 것이다. 파격적인 설정과 섬세한 심리묘사 덕분에 작가의 책은 국내 처음 번역됐음에도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진입했다. 아마도 상실과 회복이란 화두가 갖는 힘이리라. HBO에서 하반기 방영 예정인 동명의 드라마 시즌2 준비가 한창인 작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어느날 갑자기 공통분모가 없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설정이 특이하다. 염두에 둔 사건이 있나.
“2002년 부모님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다행히 지금은 완벽히 회복됐지만. 그 사고가 갑작스러운 상실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가 됐다. 한 사람이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존재하다가 바로 다음 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전까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현상을 취해 전 세계적으로 확장한 이야기다.”

혹시 종교가 있나. 작품 속 설정을 기독교적 휴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던데.
“굳이 따지자면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10대 때 이미 신앙을 잃었다. 모든 문화에 고유한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너무 허무맹랑해서 미친 것 같은 종교 이야기를 보며 순간 멍해졌다. 내가 믿고 자란 종교 역시 그런 이야기 중 하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성한 진실이라기 보다는 이 세계의 탄생 원리를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평안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수도 있겠구나 하는. 하지만 이 이야기가 종교성을 띄고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 명백하지 않나. 신앙에 대한 보상도 아닐 뿐더러 죄에 대한 처벌도 아닌데. 다만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후의 삶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발이 무엇을 의미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은 스스로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소설 속 인물들이 맞닥뜨리는 실존주의적 변화다.”

그들은 침묵과 탐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저마다의 사투를 벌인다. 당신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나.
“나는 아마도 케빈이랑 가장 비슷했던 것 같다. 내 삶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는 측면에서. 사실 나는 슬픔이 가진 강력함에도 놀랐지만, 그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는지 그 지속성이 가장 놀라웠다. 그게 이 작품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슬픔과 절망, 애도에 관한 모든 생각들을 소설을 통해 폭발시키고 싶었다. 다들 살면서 한 번 쯤은 그것들을 전가할 매개체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가 있었다. 전 국민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을 만큼 침통한 분위기였다. 14개월이 흐른 지금 아직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지겨워하는 사람도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극복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그들 삶에 놓인 비극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껏 비통해하길 원한다. 그 상실에 대해 가능한 오랫동안 기억하길 원한다. 아마 영원히 기억되길 바랄 수도 있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슬픔을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되 생계가 얽힌 삶으로 넘어가길 원한다. 이 책에서도 일상으로 되돌아오고 싶어하는 ‘시장파’와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남겨진 죄인들’의 물리적 충돌을 극대화시켜 보여주고 있지만 누가 어떤 방법을 강요할 수는 없는 문제다.”

딸 질이 거리로 나간 엄마 로리에게 선물한 라이터에 적힌 ‘나를 잊지 말아요’란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것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일까.
“그게 바로 생존자들의 딜레마다. 기억하길 원하는 동시에 모든 시간을 과거에 머무르게 할 수 없으니까. 결국은 어떻게 균형을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도 생존자들이 변화를 위해 싸우는 걸로 알고 있다. 재앙에 가까운 사고가 또 다시 일어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서 목소리를 내는 행위는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건설해 나가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책 속 인물들에게 보이지 않는 긍정적 방식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가족이 살아남은 집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건가. 그들도 또 다른 방식으로 구성원의 부재를 경험하고 애정과 관심을 쏟을 만한 새로운 인물을 찾아나서는 것을 보여주며 결국 사람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것 역시 사람이란 얘길 하고 싶었던 건가.
“매우 흥미로운 관측이다. 집 나간 엄마 대신 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살고, 새로운 연인을 찾아나서는 것은 결국 인간관계에 있어서 연결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친밀감이 얼마나 필수적인 요소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래야만 슬픔을 넘어서 좀 더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다시금 생겨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레프트오버』는 지난해 HBO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면서 시즌2 제작으로 이어졌다. 『일렉션(Election)』(1998),『리틀 칠드런(Little Children)』(2004) 등 장편소설 6편이 모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처음부터 영상을 염두에 두고 쓰는 건가.
“처음에 알렉산더 페인 감독이 『일렉션』을 영화화했을 땐 전환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그냥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때 시나리오 작법을 배운 뒤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페로타는 ‘리틀 칠드런’(2006)으로 당시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올랐다). ‘레프트오버’는 나를 비롯해 드라마 ‘로스트’ 제작자인 데이먼 린델로프 등 여러 명이 작가진으로 협업하고 있다.”

책 속에선 시장이었던 케빈이 드라마에선 경찰로 등장하는데. 변형 폭이 너무 크지 않나.
“나는 책 속 인물을 재가공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드라마적 잠재성을 더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뿐. 작은 도시의 정치인보다 경찰관이 훨씬 더 자주 흥미로운 상황에 놓이지 않겠나. 소설은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지만 드라마는 사건 전개도 중요하다.”

가르치는 일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가끔 강단이 그립진 않나.
“하버드에서는 1학년 필수 수업인 ‘설명적 글쓰기’를 가르쳤고, 모교인 예일대에서는 ‘창조적 글쓰기와 구성’ 수업을 했다. 그 때는 정말 즐거웠지만 ‘일렉션’ 이후 글을 더 쓸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작가 일에 만족한다.”

흔히 유머(humor)와 심각함(seriousness)을 당신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꼽는다. 본인이 생각할 땐 어떤가.
“그건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나는 늘 균형(balance)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유머와 심각함 사이에서, 또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그렇다면 키워드는 균형이 아닐까.”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마크 오스토(Mark Ost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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