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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행복어사전] 마스크 맨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30호 34면

사람마다 그 사람에게 고유한 패션 아이템이 있다. 모자라든지 선글라스라든지 스카프라든지. 그런 아이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그 사람의 외모나 분위기가 그것과 어울리게 된다. 가령 안경을 쓰는 사람의 얼굴은 안경친화적 외모가 된다. 안경과 어울리는 얼굴로 조금씩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경을 쓰는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 좀 어색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마스크친화적 외모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천식이 있어 마스크를 자주 사용한다. 찬 공기는 기침을 유발하는데 기침을 심하게 하면 기관지가 염증을 일으키는지 금세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호흡이 힘들어진다. 발작이 나 숨이 가빠지면 마치 100m를 전력으로 질주한 다음 한 손으로 코를 막고 1미터쯤 되는 가늘고 긴 빨대를 입으로 물고 숨을 쉬는 것 같다. 마스크를 사용하면 찬 공기를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한여름에도 에어컨 바람 때문에 늘 마스크를 사용한다. 그랬더니 마스크와 잘 어울리는, 마스크친화적 얼굴이 되고 말았다.

마스크는 우선 내 납작한 코와 지저분한 수염을 가려준다. 아울러 고집스러워 보이는 광대뼈와 푹 꺼진 볼을 감춘다. 어수선했던 얼굴이 한결 정돈된다. 원래 내 눈은 작아서 존재감이 없었는데 마스크를 쓰면 눈만 남기 때문에 크고 뚜렷해 보인다. 마스크에 어울리기 위해 눈이 조금 커진 것이다. 그저 허전했던 대머리 이마도 마스크와 대구를 이루는데, 탈모 역시 마스크와 수미쌍관의 형식미를 완성하기 위해 빨리 진행된 것이다.

나는 버스에 탄 승객을 보았다. 그들 중 몇은 마스크를 쓰고 있다. 물론 나만큼 잘 어울리지는 않지만. 최근에 마스크 친화적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증가한 것일까. 라디오에서는 메르스라는 중동호흡기증후군에 대한 뉴스를 쏟아낸다. 사망자와 감염자와 격리 대상자의 수를 발표한다. 몇 군데 혹은 몇십 군데 혹은 몇백 군데의 유치원과 초중고와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려졌다고 한다. 세상엔 온통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창궐하고 있다.

천식에 걸리기 전에도 나는 마스크를 쓴 적이 있다. 젊었을 때 자동차 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는 기계를 한 대 맡아 전기 용접을 했다. 용접할 때 나오는 불꽃 때문인지 코밑이 검게 그을었다. 나는 그것이 비위생적으로 보였다. 또 코밑에, 그러니까 콧구멍 주위로 그을음이 있으면 사람이 ‘봉숭아학당’의 영구처럼 보였다. 원래 작업규정의 안전수칙에는 마스크를 착용하게 되어 있었지만 그걸 쓰는 선배나 동료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원칙대로 하고 싶었다. 조금 귀찮고 불편해도 위생적이고 안전한 것을 택하는 것이 문명인의 자세가 아닌가. 막상 마스크를 써보니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확실히 코밑에 그을음 같은 건 묻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이틀 정도 쓰고는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내가 쓴 마스크가 선배와 동료의 비위생과 규칙 위반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이 일종의 격리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스크 없이 일하고 있는 선배와 동료에 대한 거부와 단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들로부터 내가 격리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다시 코밑에 그을음을 가득 묻힌 채 선배나 동료들과 눈이 마주치면 웃었다. 봉숭아학당의 영구처럼.

지금도 내가 쓴 마스크가 그런 역할을 하는 것 아닐까. 버스 안을, 세상을 감염지역으로 보고 승객을, 타인을 잠재적 감염자로 배척하고 격리하는 것은 아닌가. 나는 천식환자이지만, 마스크 친화적 외모를 자랑하는 사람이지만, 결국 마스크를 벗는다. 날것의 공기가 콧구멍 안으로, 기관지로, 폐로 마구 쏟아져 들어온다. 신선하다. 그런데 콧구멍 안이 간지럽다. 코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발생하는 경련성 반사 운동이 일어날 것 같다. 나는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려고 했으나 재채기는 나보다 빨랐다. 횡경막과 복부근육이 급격하게 수축하더니 내 몸 안의 공기를, 코와 입 안의 분비물과 함께 몸 바깥으로 강하게 발산한다. 버스 승객들이 일제히 내 쪽을 본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경계하는 눈으로, 비난하는 눈으로. 나는 영구처럼 웃어 보인다. 그리고 다시 마스크를 쓴다.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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