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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한 수(一手)에 8시간을 두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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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제13기 명인전에서 이시다 요시오(왼쪽에서 셋째 안경 쓴 사람)가 린하이펑 명인에게 도전 1국을 승리한 직후 광경. 제인 왼쪽은 우칭위안, 담배 피는 인물은 사카다. 사카다 뒤 서 있는 인물은 우주류로 유명한 뒷날의 다케미야 9단. 오른쪽 인물들은 시간과 착수 기록을 맡은 관계자들이다. [사진 일본기원]
슈사쿠의 필적. 슈사쿠는 33살에 요절했다.

1853년 일이다. 당시 혼인보(本因坊) 슈사쿠(秀策)는 흑1 협공에 대해 백2, 백4, 백6, 세 수를 두는데 6시간을 소비했다(기보 참조). 상대는 22세 연상인 오오타 유보(太田雄藏)로, 야스이(安井) 가문이었다. 그리 장고해도 되는 걸까. 상대에게 미안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제한시간이 없었다 해도 그렇지, 돌이 10개도 채 놓이지 않은 상태에서 단 세 수에 6시간을 소비한다? 오오타는 당시 47세로 앉아 있기 힘든 나이였지만 이를 용인해 주었기에 슈사쿠도 6시간을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에선 시간 끌며 체력전 하기도

하루는 12시진(24시간을 12개 시간 단위로 나눈 것). 짧으면 향 한 자루 탈 시간, 또는 차 한 잔 할 시간(一茶頃·일다경). 시간은 자유로운 공기처럼 주어졌다. 딱 부러지지 않았다.

바둑의 시간은 사회마다 달랐다. 일본은 몇 날 며칠을 밤새워 대국하고, 그 바둑을 쇼군(將軍, 막부체제의 최고 권력자) 면전에서 잠깐 복기했다. 중국 기사들은 한림원에 기대조(棋待詔·임금의 바둑에 응대하는 벼슬)로 속할 때가 있었다. 황제가 부르면 황제가 필요한 시간만큼 두었다. 조선에선 사랑방에서 인간적 유대감이 제공하는 시간만큼 바둑을 즐겼다.

아마도 기록으로 남아 있는 최장 시간은 한 수에 8시간일 것이다. 1907년 뒷날 슈사이(秀哉) 명인이 된 다무라 야쓰히사(田村保壽) 7단과 나카가와 센지(中川千治) 6단의 4차 10번기 1국은 12월 2~10일 이뤄졌는데 백148 한 수에 8시간을 장고했다. 277수 종국까지 읽고 1집 승리를 확인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묵좌(默坐)로 8시간이라니!

1924년 일본기원이 설립되면서 바둑은 단선적인 시간 문화를 받아들여 제한시간 개념을 만들었다. 32년 2월 요미우리신문 10인 연승전에서 우칭위안(吳淸源)은 10연승 했다. 11번째 대국자로 나선 스즈키 타메지로(鈴木爲次郞) 7단은 각자 16시간 나흘에 걸친 대국에서 우 소년을 집으로 불러들여 두었다. 나흘째 기록계에게 물었다. “남은 시간은?” “1시간 반입니다.” 노발대발했다. “이런 바둑을 어떻게 1시간 반 안에 두란 말이냐! ” 부랴부랴 시간을 18시간으로 연장했고 소년은 지쳐 무너지고 말았다.

각자 40시간의 제한시간이 주어졌던 명인 은퇴기. 슈사이 명인(왼쪽)과 기타니 7단. [사진 일본기원]

시간은 좋은 바둑의 다른 이름이었다. 33년 슈사이 명인과 우칭위안의 명인 환갑 기념대국은 각자 24시간, 38년의 명인 은퇴기 제한시간은 각자 40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돈. 점차 시간을 아끼게 되었다. 일본에서 명인전이나 혼인보전 같은 큰 타이틀 도전기의 경우 한 판을 이틀에 둔다. 처음엔 10시간을 주었지만 요즘은 각자 7시간을 주고 있다.

한국은 어땠는가. 한국 바둑을 일으킨 조남철은 바둑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시간과 싸웠다. 바둑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老)국수들의 속기 관행에서 벗어나 일본처럼 긴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56년 시작한 국수전 도전기는 5시간의 제한시간이 있었지만 그것도 짧다고 보았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의 도전기는 제한시간이 5시간이었다.

50~60년대를 풍미했던 사카다 에이오(坂田榮男) 9단은 33년 13세 때 입단대회에 참가했다. 몸이 허약했다. 시간제한 없고 철야가 보통인 시절 경쟁자들은 사카다에게 시간으로 대적했다. 오래 앉아 밤을 새웠다. 사카다는 기진맥진했다. 시합이 끝난 후에야 일본기원은 사정을 알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입단대회에서도 제한시간을 도입했다. 사카다는 34년 입단했다.

1939~58년 유명한 우칭위안의 10번기 승부에서 대국자 사이의 갈등 중 제일 큰 것도 역시 시간이었다. 49년 우칭위안과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霽) 9단 간의 제2차 10번기에서 우는 6시간을 요구했지만 후지사와는 13시간을 요구했다. 결국 13시간으로 낙착됐다.

시간과 기사들의 반응

시간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시간은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공간적 사건이 있어야만 드러난다. 공간은 변화가 드러나는 곳이다. 해시계만 해도 그렇다. 그림자 공간을 설정한 다음에야 우린 비로소 시간을 붙든다.

바둑에서 재밌는 현상 하나는 소비시간과 제한시간과의 관련이다. 1990~97년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 네 명의 대국 자료를 분석했다. 서로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을까. 표1이 조사 결과다.

시간은 상대적이었다. 상대가 장고하면 나도 장고하고 상대가 빨리 두면 나도 빨리 두고. 흑과 백의 소비시간 상관계수가 0.58인데 반해 제한시간(3시간)과 소비시간과의 상관계수는 0.31(흑)과 0.28(백)에 불과했다.

청나라 때 유명한 황룡사와 서성우의 혈루편(血淚篇) 10국이 있다. 남은 건 기보밖에 없지만 내용을 보면 속기로 두었음이 틀림없다. 서로가 실수를 연발하는데 속기의 리듬이 잘 드러나 있다. 서로가 상대에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반응을 보니 조훈현과 이창호의 시간이 생각난다. 표2를 보자. 두 기사가 처음 만났을 때엔 제자 이창호가 많이 밀렸다. 89년엔 107분을 더 썼다. 하지만 91년엔 이창호가 21분을 더 썼고, 조훈현이 밀리는 게 분명했던 92년엔 오히려 조훈현이 18분을 더 썼다. 소비시간이 성적에 의해 일부 결정되는 것이다.

묘한 현상도 있다. 2004년은 제한시간 3시간에 덤 6집반이 보통일 때다. 기사들에게 물었다. “한 수에 소비시간을 30초만 준다면 덤은 몇 집이 되어야 공평할까.” “한 수 10초라면.” 응답은 표3에 요약되어 있다.

답이 흥미롭다. 기사들은 짧은 제한시간이 흑에게 유리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보상으로 흑이 부담해야 할 덤의 크기를 늘리자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당시 속기에서 백의 승률이 높았다. 그런데도 기사들은 반대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짧을수록 흑이 유리하다고 보는 이유는 대국자의 심리적 불안 때문이다. 시간이 짧아지면 판단에 불안이 늘어난다. 그러나 흑을 잡으면 선택권이 주어지고 그건 권력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실제는 그와 다르다 할지라도. 기사들에게 덤과 시간은 혼돈되고 있다.

장고 끝에 악수는 맞는 말?

시간이 많으면 좋은 바둑이 나오는 걸까. 오래 전엔 많은 기사들이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3시간 정도면 7시간이 주어졌을 때와 별 차이가 없는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견해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건 국제대회가 많아지는 것과 관련 있다. 국제대회는 하루에 한 판을 끝내야 한다. 이동 시간을 고려해야 하고 경비 문제도 있어 아무리 길어도 4시간을 주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 3시간이다.

“장고 끝에 악수 나온다”는 말이 있다.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그와 관련해 19세기 명인 조와(丈和)가 명언을 하나 남겼다. 조와는 “50수 안에 승부를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며 “빨리 두어야 하고 오랫동안 생각하면 삿되다(행동이 바르지 못하고 나쁘다)”고 했다.

바둑은 형상의 놀이지, 논리의 놀이가 아니다. 형상은 직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평상시 공부할 때야 생각해도 되지만 대국에서는 빨리 직관적으로 핵심을 잡아챌 수 있어야 한다. 생각하는 순간 벌써 욕심이 싹터 수법이 산만해진다. 조훈현의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瀨越憲作)는 조훈현이 빨리 두면서도 핵심을 잘 짚어내자 최고의 재능이라고 감탄했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다. 바둑의 초반은 모호하다. 일본기원 최초의 9단이었던 후지사와 호사이는 초반 한 수에 2시간 이상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기사가 많다.

시간은 어려운 문제. 이쯤에서 세상의 변천이나 서술하자. 한국은 제한시간이 급격하게 줄었는데, 이제는 타이틀전 결승에서 제일 긴 게 3시간이고 대개는 1~2시간에 그치고 있다. 바둑의 정체성을 기예(技藝)에서 스포츠로 바꾼 때문일까. 그것만도 아니다. 바둑TV와 인터넷이 보다 짧은 시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TV 대국에선 한 수 30초 속기도 적지 않다.

문용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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