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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볼라 환자 카드 추적, 밥 먹은 식당까지 알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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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뉴욕에서 의료인들이 모여 에볼라 환자를 돌 볼 때 입는 보호장비 교육을 받는 모습. [중앙포토]

첫 번째 환자 조기 확진에 실패했다. 의료진도 감염됐다. 자고 나면 감염자와 접촉한 인원이 늘어 갔다. 중앙정부가 내린 대응 지침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학교는 문을 닫았다. 괴담과 악성 루머는 공포를 낳았다. 국민들은 정부를 불신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요약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 미국을 강타한 에볼라(ebola) 사태 얘기다. 초동 대응의 실패와 곧이어 생긴 공포의 확산, 여기에 더해진 정부에 대한 불신은 미국의 에볼라 사태와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판박이다.

 에볼라 사태의 파장은 컸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간선거 패인으로 작용했을 정도다. 사태는 첫 환자인 에릭 던컨이 확진 판정을 받은 지난해 9월 30일 막을 올렸다. 이후 서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 도중 에볼라에 걸려 돌아온 뉴욕의 내과의사 크레이그 스펜서가 완치돼 퇴원한 11월 11일 종료됐다. 사태 발발부터 종료까지 기간은 43일. 미국 땅 안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4명을 포함해 에볼라 감염자는 11명. 이 중 2명이 목숨을 잃었고 9명은 완치돼 병원문을 걸어 나갔다. 그 이후엔 에볼라 감염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미국 전역을 뒤흔든 에볼라였지만, 정작 피해는 크지 않았다. 에볼라와 공포감을 조합한 ‘피어볼라(fearbola)’란 용어까지 생겼던 상황은 어떻게 수습된 것일까.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회복된 것일까.

 우선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냈다. 여행 금지 조치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 단적인 사례다.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을 포함해 야당인 공화당 인사들은 에볼라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지역으로의 여행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여행을 금지하면 여행 경력을 속이게 되고, 그 결과 에볼라 추적과 차단이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뉴욕·뉴저지주가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 환자와 접촉한 의료진에 대해 ‘21일 의무격리제’를 들고 나왔지만, 연방정부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대신 정보는 철저히 공개했다. 환자명과 감염 경로, 환자가 치료받는 병원 등이 낱낱이 알려졌다. CNN은 심야의 환자 후송 과정을 생중계했을 정도다. 뉴욕시는 아예 환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조사해 그가 다녀간 레스토랑과 볼링장, 어떤 지하철과 택시를 탔는지를 모두 공개했다. 환자의 프라이버시보다 대중의 불안감 해소가 더 우선이었다.

이름이 공개된 장소의 피해가 없을 리 없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부인과 함께 그 레스토랑을 찾아가 미트볼 한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고객들은 돌아왔고 식당은 정상을 되찾았다.

토머스 프리든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장은 쏟아지는 질타 속에서도 매일같이 기자회견을 열어 상황을 상세하게 브리핑했다.

 대응 체제를 일사불란하게 가다듬은 것도 주효했다. 처음부터 에볼라 치료 역량을 갖춘 ‘수퍼병원’을 활용했다. 뉴욕의 경우 맨해튼 벨뷰병원을 거점 병원으로 삼았다. 의심환자는 지정된 곳으로 모여 격리됐다. 덕분에 다른 지역병원들은 여느 때처럼 돌아갔다. ‘에볼라 차르’도 신설해 의료 자원 배분, 관계기관 이견 조정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겼다.

 대통령은 모든 조치의 정점에 있었다. 오바마는 강력한 메시지를 만들어냈다.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 “공포에 좌우되지 말고 과학과 사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에볼라 환자를 치료하다 감염된 간호사가 퇴원하자마자 만났다. 그리고 포옹했다. 에볼라는 치료 가능할 뿐 아니라 완치되고 나면 감염 위험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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