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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증도 이젠 패션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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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드라마 ‘미생’은 직장인들의 많은 공감을 얻었다. 직장인들의 일상을 쏙 빼닮았기 때문이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많은 회사원은 ‘장그래’나 ‘김 대리’처럼 일하는 내내 사원증을 걸고 있진 않는다. ‘미생’의 실제 모티브가 됐던 무역회사 직원 김모(29·여)씨는 “나일론 줄이 닿으면 목 부분이 아프고 쓰리다. 줄이 더러워져도 빨기 어렵고. 정말 꼭 필요한 때 아니면 차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직장인 사이에서 일명 ‘개 목걸이’로 불리는 사원증은 애증의 대상이다. 사내에서 이동할 때 걸고 다니면 편한데 ‘폼’은 안 난다. 언제 찍은 사진인지 스스로도 못 알아볼 만큼 어색한 표정의 반명함판 사진은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다. 그런데 영원히 천편일률적일 줄 알았던 사원증이 요즘 촌스러움을 벗고 ‘디자인’을 입기 시작했다.

 ◆전문 사진가가 찍은 ‘화보’ 사진=대림산업은 사원증 제작을 위해 전문 사진가를 동원했다. 상반신 전체를 잡은 프로필 사진은 적절한 비율과 균형 덕분에 사원증 속 직원의 모습이 모델처럼 보인다. 홍보팀 박지영 과장은 “촬영 컨셉트부터 사진 선택까지 사원들이 직접 하니까 대다수가 만족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광고 회사 오리콤도 블랙과 화이트 로고에 맞춰 상의를 블랙으로 입고 전 직원이 이틀에 걸쳐 촬영을 진행했다. 네이버도 창립 10주년이 되던 해 디자인을 바꾸고 전문 사진가에게 촬영을 의뢰했다. 자연스러운 포즈와 흑백사진이 컨셉트였다. 사원들에게 샘플 디자인을 먼저 알리고 각자 개성 있는 분위기로 촬영할 수 있도록 준비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사원증도 다이어트?=크기가 엇비슷하던 사원증이 점차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이 사용하는 사원증은 폭 5㎝, 길이 8㎝ 정도로 신용카드와 비슷하거나 크다. 반면 디자인을 강조한 사원증은 폭 4㎝ 이하의 날씬한 모양이 대세다. 조선시대 때 사용했던 호패에서 모티브를 따온 현대카드 사원증은 폭 3.4㎝, 길이 6㎝로 길쭉한 모양이다. 현대카드 직원 유모(29)씨는 “가볍고 휴대하기 좋다. 다른 회사와 차별화되는 디자인도 맘에 든다”고 말했다. KT 사원증도 폭 3.7㎝, 길이 8㎝로 변신했다. KT 직원 오모(26·여)씨는 “손이 작아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데 날씬한 모양이라 잡기 편해서 좋다”고 했다. 신한생명 사원증도 폭 4㎝, 길이 9㎝의 홀쭉한 모양이다. 총무부 오세민 대리는 “어떤 디자인이 좋을지 사내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슬림한 디자인이 가장 인기가 많아 채택했다”고 말했다.

 ◆똑같은 건 싫어, ‘개성 존중’=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톡톡 튀는 사원증도 있다. 감자탕 프랜차이즈 업체 ㈜보하라는 ‘남다른 감자탕’이란 이름만큼 사원증도 ‘남다르다’. 앞면에는 연필 스케치 형식으로 그려진 개인 사진과 함께 ‘쪽팔리게 살지 말자’는 강렬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뒷면에는 개인의 좌우명과 가족·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자유롭게 배치돼 있다. 홍보팀 고장석 과장은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항상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며 “각자의 좌우명을 적은 건 ‘꿈을 이루는 어른’으로 살기를 바라는 경영 이념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품까지 동원해 자신의 개성을 살린 사진이 눈에 띄는 SK플래닛 사원증은 사내에서 ‘재미있는 사원증 콘테스트’를 열었을 만큼 유명하다. 홍보팀 이교택 매니저는 “2013년 판교 신사옥으로 이전하면서 테크노밸리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맞춰 창의적인 형태의 사원증을 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룹 자체의 개성을 살린 사원증도 있다. CJ그룹 사원증은 사업군에 따라 색상이 다르다. 식품 관련 사업군은 ‘건강’을 뜻하는 빨강, 유통은 ‘편리’를 상징하는 파랑,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사업군은 ‘즐거움’을 의미하는 노랑을 적용했다. 홍보팀 김치호씨는 “직원 개개인에 소속감을 부여하는 의미도 크다”고 했다.

 ◆사원증 디자인은 오너의 관심사=현대카드 사원증 ‘마이디(MyD)’는 흑백사진만 사용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홍보팀 차경모 과장은 “본사가 추구하는 세련되고 감성적인 디자인, 샤프하고 미니멀한 느낌 때문”이라고 했다. 기능적인 면도 남다르다. 뒤집히지 않는 구조로 고안된 목걸이는 우레탄 소재를 사용해 피부에 닿았을 때 쓸림이나 트러블이 없다. 카드 부분은 스모그 처리로 흠집이 덜 나고 내구성도 높다.

 연예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 사원증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디자인 컨설팅그룹 ‘플러스엑스(Plus X)’가 만든 것으로 사원들 이름을 이니셜로 적은 ‘YG서체’가 눈에 띈다. 플러스엑스 신명섭 대표는 “강렬하면서도 감각적인 YG 이미지를 글자체로 표현한 것”이라며 “일반적인 흰색 사원증과 달리 검정을 사용한 건 다양한 시도를 하는 YG답게 모든 색깔을 품는 검정의 압도적인 매력을 차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는 회사의 이미지를 서체로 표현한다는 아이디어에 매우 만족하며 원래의 각진 서체 외에 여러 사업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끝을 둥글린 서체도 한 벌 더 만들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현대카드 차경모 과장은 “잘 디자인된 사원증은 기업의 정체성을 대신한다”며 “내부 구성원이 경험하는 기업 이미지가 외부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사내에서부터 이뤄지는 ‘인터널 브랜딩(Internal branding)’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김하온 기자, 오경진·김지혜 인턴기자 kim.haon@joongang.co.kr

[S BOX] 명함도 개성 … 이혼 전문 변호사, 양 끝 당기면 갈라져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소품엔 사원증뿐 아니라 명함도 있다.

 아날로그 엔진의 박은지 디자이너는 “예전에는 명함이 회사 로고·직책·전화번호·e메일 등을 적은 ‘직장 증명’의 도구였다면 요즘에는 나를 이야기하는 ‘존재 증명’의 매개체로 바뀌고 있다”며 “보는 순간 직업이나 업종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도록 명함 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지난해 미국의 마케팅 회사 바이럴노바가 발표한 ‘29개의 천재적인 명함’엔 기상천외한 형태들이 등장했다. 스트레칭을 하는 여성 사진에 구멍을 두 개 뚫어 손가락을 끼워 넣으면 요가 자세로 보이는 요가 강사의 명함이 대표적 사례다. 오스트리아의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사진 속 여성의 가슴 부분을 고무 패드로 만들어 손으로 밀면 볼륨이 살아나도록 했다. 다소 민망하지만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다.

 가운데가 점선으로 나뉜 이혼 전문 변호사의 명함도 밀리지 않는다. 명함 끝을 잡고 당기면 두 개로 찢어진다. 분리된 명함에는 각각 변호사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인쇄돼 있다. 이혼을 준비 중인 부부가 나눠 가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업을 드러낸 명함이 많아진다. 피부과나 미용실 등 여성 고객을 많이 상대하는 직업엔 레이스 달린 명함이 유행이다. 배재성 기자, 박양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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