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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메르스 불감 지대? 여당, 4일째 국회법 싸움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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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유승민 원내대표(왼쪽), 서청원 최고위원이 4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회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와 관련해 친박계와 비박계의 공방이 이어졌다. 친박계는 “결자해지해 달라”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김상선 기자]
허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의심환자가 전날 사망해 ‘세 번째 메르스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퍼지던 4일 오전 9시.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선 최고위원회의가 열렸다.

 ▶김무성 대표=“국가적 비상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의 불안과 불신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중략) 위중한 시기에 정치권이 구태의연한 정치적 공방에 몰두하고 정치적 도의에 어긋난 말로 서로 비방하는 것은 국민 불신을 자초하는 행위다.”

 ▶서청원 최고위원=“조금 전에 김 대표의 발언은 문제가 있다. 앞으로 아무리 대표라고 해도 국회법 개정에 대해 얘기하는 이들은 전부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이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고 최고위원들을 나무라는 식으로 얘기하지 말라.”

 ▶김 대표=“(당내가 아닌) 여야 상호 간 비방과 정치 공세를 자제할 것을 제안한다고 분명히 얘기했다. 오해하지 말라.”

 대통령령(시행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권을 규정한 국회법 개정안이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 증폭되고 있는 친박계와 비박계의 갈등은 이렇듯 이날도 멈추지 않았다. 두 사람에 이어 발언한 김태호 최고위원은 “책임지는 정치의 모습이 필요하다. 유승민 원내대표가 용기 있는 결단으로 결자해지해 달라”며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인제 최고위원도 “지금 메르스 사태 때문에 (개정안 문제를) 그저 적당히 미봉하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다”고 거들었다. 최고위원회의 직전 라디오에 나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개정안이) 폐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이 최고위원은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명쾌한 것은 결국 청와대에서 거부권 의사를 보였기에, 이 부분은 (거부권 행사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지난 1일 친박계가 유 원내대표를 공격하며 표출된 여권의 자중지란은 친박계 대규모 회동(2일)→비박계 반격(3일)→친박계 재반격(4일)의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까지 끼어들어 지난 2일 “당정 협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청와대 핵심 관계자)라고 직격하고, 유 원내대표가 다음 날인 3일 “어른스럽지 못한 얘기”라고 맞받는 감정적 언사도 주고받았다.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과 협상할 때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는지를 두고는 진실 공방까지 벌였다.

 그러는 사이 메르스 확진을 받은 환자는 1명(지난달 20일)에서 36명(4일 오후 11시 현재)으로, 격리 대상자는 1600명을 넘겼다. 전국의 휴업 학교는 1000곳에 육박했다. 그뿐이 아니다. 바이러스 침투를 막는다는 마스크는 불티나게 팔리고, 소독 효과가 있는 손세정제 판매량도 급증했다.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메르스 콜센터에는 상담전화가 넘쳐난다.

 이렇듯 국민의 머릿속에는 온통 메르스 걱정뿐인데 명색이 대한민국 집권당 사람들의 뇌리에는 유독 국회법 개정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일단 힘을 모아 급한 불을 끄는 게 당연한데 여권에선 지금 그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상복(喪服) 입는 기간을 놓고 남인과 서인이 대립했던 조선 현종 때의 예송논쟁(禮訟論爭)은 350년 전의 권력 다툼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런 고차원의 담론이 오가던 현종(1659∼1674) 재위 기간 동안 백성은 대기근과 전염병 창궐로 큰 고통을 겪었다.

글=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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