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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카지노 중독성 더 치명적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카지노의 외국인 이용을 허용하면서 내국인 출입은 금지하고 있다. 크루즈법 심의 과정에서 ‘선상 카지노는 사행성을 부추기고 도박 중독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는 논란에 직면한 해양수산부(해수부)가 ‘내국인 출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외국인 전용으로만 운영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당시 여론은 ‘선상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 허용은 오픈 카지노의 도화선으로 작용해 나라 전체가 도박 열풍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런데 지난 5월 경제관계장관들과 마주한 해수부 장관은 돌연 ‘선상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 허용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2012년 폐업한 최초의 국적선 클럽하모니의 실패 이유가 ‘외국 크루즈에 있는 카지노가 없어서 경쟁에 밀렸기 때문’으로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선상 카지노는 공해상에서만 출입이 가능하므로 이용 시간이 짧고 베팅금액도 사행성 논란이 생길 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이제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사행성 논란은 가라앉혀도 좋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게 해수부의 공식 입장이다.

 그렇다면 과연 카지노가 크루즈 경쟁력의 유일한 대안인가. 하모니호를 운영했던 경영진에 따르면 크루즈에서 카지노는 중국 여행객을 유치하기 위해 필요한 마케팅 채널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크루즈는 승선권과 선내 식사 및 시설이용권을 포함한 티켓 구매 수익이 80%, 승선 후 선상 수익이 20% 정도로 운영된다. 이 중에서 카지노로 인한 수익은 전체 매출액의 10% 이내인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므로 세계적인 크루즈 선사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관광 목적지의 매력, 다양한 다이닝 서비스, 수준급 공연장·댄스홀·수영장·레스토랑 등 부대시설의 차별성, 선내 문화·예술·여가 프로그램의 독특성, 운항 경험과 안전성 등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국적 크루즈 선사 설립과 운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선상 카지노의 불허가 아니라 ‘다양한 시설에 대한 수많은 규제들’이라는 게 하모니호 경영진의 주장이다.

 한편 해수부가 파악하고 있는 선상 카지노의 도박중독 자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오류가 많다. 무엇보다도 ‘선상 카지노의 일평균 출입 시간이 5∼6시간에 불과해 도박 중독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라는 해석부터가 문제다. 강원랜드 이용객들의 평균 소비시간이 7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선상의 폐쇄된 공간에 갇혀서 일정한 게임에 몰입하는 망망대해 속 5시간의 치명성을 가늠할 수 있다.

게다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의 분석에 따르면 이용자의 70% 정도가 중독성이 거의 없다는 희망의 복권을 통해 도박에 입문해서, 결국은 가장 중독성이 높은 카지노에 이르러 절망에 빠지지 않는가. 도박은 이용 시간이나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접근이나 경험 자체가 중독의 원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합법적인 도박의 종류가 세계 최다일 뿐 아니라 국민의 도박 성향과 불법 도박이 결합해 ‘도박 천국’이란 오명을 낳고 있다. 2014년도 사감위의 사행산업 이용실태는 우리의 도박중독 유병률이 5.4%로, 영국·호주 등 외국보다 2~3배 높은 수준임을 보고하고 있다. 동시에 국민의 64%가량은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대단히 심각한 수준임을 염려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해수부가 구태여 행정의 신뢰를 저버리고 국민의 정서를 무시하면서까지 선상 카지노의 내국인 출입을 강행할 이유가 있는가. 지난 1월의 약속처럼 외국인 전용으로 운영해 나가면서 차분하게 인프라·시스템·서비스 등을 준비하는 장기적 안목과 경영적 관점이 필요하다. 한탕주의 성과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크루즈 산업 육성이 민생 안정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사행성 논란에서 한 발 비켜선 국민과 국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허정옥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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