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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치권, 제발 그만 좀 싸우고 메르스 대책 세워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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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온 나라가 ‘중동호흡기 증후군(MERS·메르스) 공포’에 휩싸여 있지만 정치권엔 마치 딴 나라 얘기로 들리는 모양이다. 어제 집권세력이라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제1야당이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인 행태는 국민의 불안과 고충은 안중에 없는 무책임과 몰염치의 극치였다. 방역체계의 총체적 부실과 정부의 초동대처 실패로 메르스 감염 사망자가 2명으로 늘고 확진 환자가 불어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이 와중에 ‘메르스 괴담’이 난무하면서 국민들은 맘 졸이는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청와대와 정치권은 상황을 진정시킬 대책 마련에 나서기는커녕 국회법 개정안 논란으로 촉발된 집안싸움과 헤게모니 다툼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런 한심한 집단에 국가의 운명을 맡긴 국민들의 신세가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보인 행태다. 행정부의 ‘행정입법’인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데 이어 어제는 대야(對野) 협상의 사령탑인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론’까지 나왔다. 제정부 법제처장은 친박계 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에 나와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폈다. 친박계 의원들은 공공연히 “식물국회에 이어 식물정부를 야기한 유 원내대표는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이장우 의원)거나 “유 원내대표가 졸속 합의해준 부분에 대해 반드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김태흠 의원)며 유 원내대표를 압박했다. 청와대도 “이런 상황에서 당정협의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새누리당 지도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한 발언을 해 당·청 간 긴장수위를 끌어올렸다. 당·청 간에도 이견이 있을 순 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지도부를 공격하고 청와대가 이를 묵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오죽하면 내년 총선의 헤게모니를 노린 친박-비박 간 쟁탈전이란 해석까지 나오겠는가.

 야당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4·29 재·보선 패배에 대한 평가를 겸해 열린 1박2일간의 워크숍은 정부·여당에 대한 날 선 비난만 가득했을 뿐 당장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메르스 문제에 대한 밀도 있는 논의나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가 하는 일에 딴지를 걸면서 정치적인 갈등을 키우는 데 관심을 보이고, 메르스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문재인 대표)며 모든 책임을 정부에 떠넘겼다.

 경위야 어떻든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불거진 이상 청와대와 국회는 법이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차분하게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게 순리다. 더구나 국가비상사태를 방불케 하는 메르스 사태가 긴급 현안으로 떠오른 만큼 국회법 개정안 논란은 접어놓고 메르스 대책 마련에 지혜와 역량을 모으기 바란다. 정치권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행보를 계속한다면 끝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는 ‘외딴 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