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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메시 vs 연출가 피를로, 127억 놓고 단판 승부

중앙일보

입력

리오넬 메시(왼쪽), 안드레아 피를로. [사진 AP]

리오넬 메시(28·FC바르셀로나)냐, 안드레아 피를로(36·유벤투스)냐.

7일(한국시간) 오전 3시45분 독일 베를린의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리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FC바르셀로나와 유벤투스의 결승전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 결국 '메시아(messiah·구원자''로 불리는 메시와 '레지스타(regista·연출가)'란 별명을 갖고 있는 피를로의 대결이다. 올림피아 슈타디온은 고(故) 손기정 선수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해 월계관을 썼던 곳이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은 1050만 유로(약 127억원)다. 준결승까지 누적상금·중계권료·입장료 등을 합하면 우승 팀이 챙기는 수입은 약 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시즌 대회 결승전을 TV 생중계로 시청한 팬은 세계적으로 1억7000명에 이른다. 돈과 명예가 걸린 단판 승부의 향방은 메시와 피를로, 두 선수의 발끝에 달려 있다.

메시 "겸손하게 더 많이 이룰 것"

메시는 '축구의 신(神)'으로 불린다. 그의 이름에 감탄사 '아(ah)'를 붙이면 별명인 '메시아'가 된다. 메시는 이번 대회에서 10골·5도움을 올리며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지난 7일 바이에른 뮌헨(독일)과 4강 1차전에서는 3분 사이에 2골을 몰아넣었다.

호셉 과르디올라(44) 뮌헨 감독은 "지구상에 메시를 멈출 팀도, 전술도, 감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벤투스 공격수 카를로스 테베스(31·아르헨티나)는 "메시는 다른 별에서 온 선수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87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태어난 메시는 10세 때 키가 1m27cm에 불과했다. 11세 때 성장 호르몬 분비 장애 판정을 받아 밤마다 다리에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아르헨티나 명문 리베르 플라테는 한 달에 900달러(약 100만원)가 드는 치료비에 부담을 느끼고 메시 영입을 포기했다. 운명처럼 메시의 경기를 지켜 본 바르셀로나 관계자가 그에게 손길을 뻗쳤다. 바르셀로나의 스카우트 담당자는 "화성인조차 메시의 특별함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2000년 12월 레스토랑에서 메시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냅킨에 즉석 계약서를 써준 뒤 메시를 영입했다.

키가 1m69cm까지 자란 메시는 17세 때인 2004년 바르셀로나 1군에 데뷔해 스페인 리그 최다골(286골), 한 시즌 최다골(50골) 등을 세우며 UEFA 챔피언스리그 3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7회 등 각종 우승을 휩쓸었다. 세계 최고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를 2009년부터 4년 연속 수상했다.

메시는 86년 월드컵 우승을 이끈 디에고 마라도나(55·아르헨티나)의 재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마라도나는 현역 시절 약물중독과 폭행 등에 휘말리며 '악동'이라 불렸다. 반면 메시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겸손하다.

메시는 『메시, 축구의 신(저자 루카 카이올리)』에 게재 된 인터뷰에서 "전 세계인들이 축구왕이라고 부르는데 기분이 어떤가"란 질문에 "훌륭한 팀에 우연히 들어간 평범한 선수일 뿐 나는 절대 그런 선수가 아니다. 그런 호칭은 과분하다"고 답했다. 그는 어릴 적 '겸손함'이란 단어에 대해 "인간이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자세" 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카테나치오(Catenaccio·일명 빗장수비)는 뚫기가 쉽지 않다. 유벤투스는 이번 대회에서 경기당 0.58실점(12경기 7실점)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각종대회 55경기에서 56골을 터트린 메시는 스페인 리그에서 우승을 거둔 뒤 "이번 시즌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고 말했다.

피를로 "슈타디온은 행운의 땅"

'메시의 대항마' 피를로의 별명은 '레지스타'다. 연출가처럼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경기를 술술 풀어간다는 의미다. 피를로는 이번 대회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와 4강 1차전에서도 걸출한 활약을 했다. 포메이션 4-3-1-2 중 '3'의 중앙에 포진해 택배 기사처럼 정확한 패스(성공률 88%)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30대 중반을 무색케하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무려 11.89km를 뛰며 결승행을 이끌었다.

79년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태어난 피를로는 16세 때 브레시아 소속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 데뷔했다. 피를로는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유럽 21세 이하 선수권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2001년 AC밀란(이탈리아) 시절 주전경쟁에서 밀리자 포지션을 변경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자리를 잡은 뒤 수비를 할 때는 압박에 가담하고, 공격을 할 때는 볼을 뿌려주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후방 조율사)'로 변신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피를로는 자서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에서 "나는 그라운드의 집시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훼손되지 않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미드필더" 라고 적었다.

피를로는 AC밀란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두 차례 이끌었고, 유벤투스를 2011년부터 4시즌 연속 이탈리아 세리에A 정상에 올렸다.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과 유로2012 준우승도 일궈냈다.

2006년 월드컵 독일과 4강전 당시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이끌어 낸 피를로의 '노 룩 패스(No look pass)'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유벤투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37)은 "피를로의 플레이를 본 순간 사람이 아닌 신(神)의 플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축구기술은 이 세상을 넘어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남자' 피를로가 AC밀란 소속이던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박지성(34)에게 꽁꽁 묶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피를로는 자서전에 "박지성은 마치 경비견 같았다"고 썼다.

피를로는 냉정해서 더 무섭다. 그는 자서전에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오후에 나는 베를린에서 낮잠을 자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라운드에 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이번 결승전이 열리는 올림피아 슈타디온은 피를로가 이탈리아를 이끌고 2006년 월드컵 우승을 거뒀을 때 프랑스와 결승전을 치렀던 곳이다.

등번호 21번을 고수하는 피를로는 또 자서전에 "21일은 내가 결혼식을 올린 날이자 프로 데뷔전을 치른 날이다. 숫자 21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 이 책이 20장에서 끝나는 이유다. 다음 장은 미래에 있을 또 다른 이야기로 채워질 여백의 페이지였으면 한다"고 했다. 피를로의 자서전 21장이 개인 통산 3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채워질 지는 7일 새벽 판가름 난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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