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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트렌드] 비주얼 시대의 유망업종 ‘연예견’ 시장 뜬다 - 연예견 연습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 전국에 100여 개 애견 훈련소, 억대 연봉에 전문 기획사 관리받는 연예견도 나와… 면역력과 집중력이 강화되는 생후 3~4개월짜리 애완견이 가장 인기

연예견들이 잡지화보 촬영을 위해 한껏 멋을 내고 테이블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모카, 깨비, 두치, 마리.

예능 기획사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논현동의 한 광고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은은한 음악에 실려오는 짙은 커피향이 방문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왼편에 마련된 아늑한 스테이지에는 카메라와 조명장치, 조명 반사판, 고급 식탁과 의자 등 촬영에 필요한 각종 소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건 뭘까? 손으로 누르면 삑 소리가 나는 앙증맞은 인형,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형광 색종이가 휘날리는 폭죽 장난감, 닭고기를 말려 만든 개껌에다 강아지용 줄무늬 티셔츠…. 그렇다. 오늘은 사람이 아닌 애견이 광고의 모델이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탱크. 올해 네 살인 암컷 포메라니언 견종이다. 탱크는 여성용 패션잡지 <보그걸>, 애견 의류 브랜드 ‘해지도기(HAZZY DOGGIE)’의 전속 모델로 활동하면서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모델견’이기도 하다.

부드럽게 찰랑이는 갈색 머리결에 모성을 자극하는 깊고 동그란 눈망울을 가진 탱크는 연예인이 기념사진 촬영을 요청할 정도로 업계에서는 유명세를 탄다. 톱모델 고소현, 아이돌 그룹인 애프터스쿨·씨스타·샤이니 등 쟁쟁한 스타 연예인들과 함께 제품 광고 모델로 나섰다. 한 케이블 방송 예능프로그램은 탱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하루 일과를 조명하기도 했다.

탱크가 모델견으로 나선 건 우연이었다. 주인 홍승현(31·애니멀포토그래퍼) 씨는 탱크가 어릴 적부터 사진 촬영에 흥미를 보여왔다고 한다. 카메라를 들이댈 때마다 아역배우처럼 그윽이 렌즈를 응시했다는 것. 홍씨와 탱크는 카메라를 매개로 호흡이 척척 맞아 떨어졌다. 홍씨는 내친 김에 동물사진 스튜디오를 차렸다. 탱크를 모델로 한 사진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고 여기저기 입소문을 타면서 급기야 제품 광고와 화보 촬영 모델로 나서게 된 것이다. 탱크를 모델로 한 핸드폰 케이스, 벽시계, 양말 제품은 프랑스 파리의 유명 편집숍의 진열장을 장식하기도 했다.

연예견 촬영 건수 한 해 100건 이상

올 해 두 살인 달마시안 마롱이는 국내 유명 자동차메이커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올해 두 살인 달마시안 ‘마롱이’도 국내 유명 자동차메이커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마롱이의 주인 전보영(29·대전 대덕구) 씨는 마롱이를 연예견으로 키우려고 아예 기획사에 연습견으로 등록시켰다. 카메라 친화력을 키우고, 사람이 손을 대거나 무심결에 건드렸을 때도 공격하지 않도록 교육받는 이른바 ‘연습생’ 생활을 거쳤다. 이런 관문을 거쳐 모델로 빛을 보기까지 투자한 비용이 4개월에 200만원을 웃돈다.

광고시장에는 3B의 법칙이 있다. 여성(Beauty), 아기(Baby), 동물(Beast)을 등장하는 광고는 소비자의 몰입도가 높아져 광고효가가 탁월하다는 것이다. 대중을 구매로 이끄는 흡입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업계에서는 해석된다.

방송, 영화, 상업광고에 등장하는 애완견도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 동물모델 전문 기획사 관계자는 “우리 데이터 베이스에는 1200여 마리의 애견이 등록돼 있다”면서 “그중 60여 종이 방송활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남애견훈련소 김경열 소장은 “한국에서 언제라도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 연기견이 50~60 마리를 헤아린다”며 “연예견 촬영 건수도 요즘은 한 해 100건 이상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고 시장의 동향을 설명했다. 요즘은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견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면서 연예견을 찾는 광고주와 기획사가 증가한다고 한국애견협회 박애경 사무총장이 말했다. 박 총장은 “방송계에서 애견 섭외에 대한 자문으로 한 달에 5회 이상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사실 애완동물이 TV 브라운관과 스크린, 상업광고에서 등장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 <주주클럽> 부터 2012년 <동물일기><캣츠앤독스>등 10여년 동안 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꾸준한 인기를 구가했다. 단순히 동물 소개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수준을 넘어 배우 뺨치는 연기력을 과시하면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발돋움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의 ‘떡대(알래스칸맬러뮤트 견종)’, 영화 <마음이2>에 ‘달(래브라도레트리버 견종)’ 등이 대표적인 ‘연기견’이다.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했다. KBS <1박 2일>의 ‘상근이(그레이트피레네 견종)’부터 tvN <삼시세끼>의 ‘산체(장모치와와 견종)’ 등은 다른 연예인을 제치고 시청자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데뷔 위해 4개월 연습생 과정 수료

요즘 대세인 모델견 탱크는 방송·화보 촬영 등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다.

연예인 인기 뺨치는 연예견 시대가 열릴 조짐을 보이자 애완동물 주인들이 애완동물 데뷔에 열을 올린다. 회원수 100만 명을 자랑하는 한 애완견 관련 인터넷 카페 ‘방송출연 문의’ 게시판에는 기르는 강아지 사진과 사연을 올린 댓글이 1천 개를 넘어서기도 했다. 문이 열리면 쏟아져 나올 연예견 지망생들이 줄을 선 것이다. 탱크의 주인 홍성현(애니멀포토그래퍼) 씨가 자신의 동물사진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강아지 모델 선발대회’에 2천 마리가 넘는 애완견들이 지원했다. 홍씨는 “물론 경제적 동기도 작용하겠지만 애완견의 주인들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기르는 동물이 전파를 타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을 연예견으로 만들어주는 산업이 각광을 받는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보통 연예인으로 데뷔를 하려면 우선 기획사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는다. 연기·춤·노래 등 다양한 재능을 연습한다. 피부 관리, 몸매 관리 등 미모를 가꾸는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어느 정도 내공이 쌓이면 수십∼수백 번의 오디션 행렬에 몸을 싣는다.

이와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는 ‘연예견’들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경기도 이천 소재 한 연예견 기획사의 4개월 코스 ‘연습견’ 프로그램을 들여다 보자.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오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 놀며 체력을 다진다. 점심을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연기 지도를 받는다. 연기 지도의 핵심은 카메라 집중력을 키우는 일이다. 카메라가 움직이는 대로 시선과 몸이 반응해야 사진발, 카메라발을 받는다. 연습견이 평소 좋아하는 소품, 음식, 소리를 찾아내 촬영장에서 반응을 유도하는 도구로 활용하기도 한다.

예절 교육도 중요하다. 대부분의 촬영은 낯선 출연자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사람과의 친화력 배양이 주된 과제다. 연기자가 와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면 연습견은 두발을 앞으로 쭉 뻗고 상체를 숙이도록 교육받는다.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고 사귀는 법을 가르치는 셈이다.

3개월간 반복해서 기본 예절과 연기 지도를 받고 4개월째에는 ‘냉장고 문 열고 생수 가져오기’ 등과 같은 응용 동작을 익힌다. 이렇게 4개월을 교육하는 데 드는 비용이 200만원 정도다.

연습견 모집은 국내 연예기획사들의 연습생 모집과 흡사하다. 1차는 사진과 지원서를 받고, 2차로 현장 면접을 본다. 현장 면접에서 강아지의 외모도 보지만 성격이 당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 기획사의 관계자는 “아무래도 동물이 소심하면 촬영할 때 애를 먹게 된다”면서 “되도록이면 활달한 성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연습견의 나이도 어릴수록 좋다. 당장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잠재성을 더 따지는 건 연예계와 다를 바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면역력과 집중력이 강화되는 생후 3~4개월의 애완견들이 연습생으로 많이 들어온다고 이 기획사는 설명했다.

이렇게 기본기를 갈고닦은 연습견이 연예견으로 데뷔하면 연예인 뺨치는 자기 관리에 들어간다. 피부 관리는 빠져서는 안될 코스다. 촬영 전에는 ‘애견 전용 스파’를 찾아 때를 빼고 광을 낸다. 마이크로 버블 스파나 탄산스파를 통해 피부 노폐물을 제거하고 털에 윤기를 더한다. 예전에는 위생·청결 관리가 주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심미적 요소가 강조된다. 케모마일, 레몬 껍질, 라임 오일이 들어간 라이트 컬러 코트 샴푸로 선명한 헤어 컬러를 부각시킨 다음, 시어버터, 코코넛, 로즈 오일 성분이 들어간 컨디셔너를 사용해 수분과 영양을 풍부하게 공급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력 넘치고 윤기 나는 모발과 몸매를 자랑하는 연예견으로 거듭난다.

연예견의 드레스 코드를 받쳐줄 브랜드 산업도 동반 성장한다. 애완동물 패션편집숍의 안혜영 대표는 “사업 초기 15여 개(국내 5개, 수입 10개)안팎이던 애완동물 의류 브랜드가 지금은 현재 50~70개 입점해 있다”고 밝혔다. 한두 가지로 단촐하던 메이커도 경쟁자들로 붐빈다. 예컨대 ‘강아지 옷’이 한 종류였다면 이제는 그들도 ‘슬랙스’, ‘치노팬츠’, ‘트렌치코트’, ‘데님셔츠’ 등 패셔너블한 제품군을 형성한다. 가격대도 5천원부터 15만원까지 다양하다.

연중 1억5천만원 수입 연예견도 등장

지난달 8일 경기도 이천의 애견 기획사 대표 조현훈 씨가 연예견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고단한 촬영을 마친 연예견들에게 달콤한 휴식을 제공하는 호텔도 생겨났다. 서울 논현동 한 애견숍 대표 박윤정 씨는 “강아지들의 안정을 위해 호텔 방 내에 클래식 음악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고 말했다. 하루 2만원에서 5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이면, 연어·닭고기·상어 연골까지 입맛에 맞춘 간식 메뉴가 제공된다.

외모, 키, 연기력으로 배우의 인기가 결정된다면 연예견 역시 타고난 헤어 컬러와 아담한 체구에 연기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연예견끼리의 이미지 경쟁도 치열하다. ‘코믹’하면 퍼그나 볼테리어가 떠오르고, ‘카리스마’ 하면 도베르만을 꼽는다. 같은 종의 연예견들은 연기력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연예견 중에는 차별화 전략으로 개인기를 기르기도 한다. 손발을 자유롭게 놀리는 경우 손발 동작을 응용해 ‘도그댄스’를 선보이는 가하면, 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가며 사뿐한 발걸음을 교차하는 ‘우아한 워킹’으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증가한 수요를 반영하듯, 애완견들의 연예계 데뷔를 전문으로 하는 기획사도 몇몇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타독 엔터테인먼트가 1세대 연예견 기획사로 불린다. 현재 8마리의 ‘연습견’들이 이 기획사에 소속돼 연기 지도와 훈련을 받고 있다. 연예견 기획사가 생기기 전에는 애견 훈련소가 강아지들의 데뷔를 도맡았다. 애견 훈련소는 전국 100여 곳에 달한다. KBS <1박 2일>에 출연해 ‘국민 애견’이라는 수식어를 얻었던 ‘상근이’도 훈련소 출신이다. 훈련소에서는 방송 출연이 목적이 아니라 강아지들을 교화시키기 위함이었지만, 잘 훈련된 강아지들이 사람들의 말을 잘 따르니 자연스럽게 방송이나 광고에 출연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뜨면 얼마나 벌까?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에 출연한 ‘떡대’는 회당 50만~100만원의 출연료를 받았다. 이를 1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억원 대 정도다. 영화 <마음이2><블라인드>에 출연한 ‘달(래브라도 리트리버)’ 역시 1년에 출연료가 1억5천만원 정도 된다. 직장인의 꿈인 억대 연봉을 가뿐히 넘긴다.

2012년 농협경제연구소는 국내 애완동물 시장이 매년 두 자리 수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애완동물 광고 모델, 미용 관리, 보험과 같은 서비스 시장이 유망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게다가 애완동물 관련산업 시장은 2020년까지 6조원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고 보면 연예견 시장도 동반 성장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하겠다.

글=맹서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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