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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불로초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진시황의 명에 따라 2200여 년 전 불로초를 구하러 한반도로 떠난 서복(徐福)의 이야기는 전설로 치부하고 말 일이 아닙니다.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얼마나 유구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한중 관계가 수교 20여 년 만에 이처럼 가까워지게 된 것은 서복의 항해와 같이 오랜 교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장량췬(張良群·76) 중국 서복회 부회장 겸 학술주임의 지론이다. 그는 서복에 관한 단행본 4권을 펴냈고, 발표한 논문을 모두 합치면 글자 수로 60만 자 분량에 이른다. 그 중 가장 애착을 갖는 건 『서복과 한반도』다. 서복 출항 2222년째인 2012년에 펴냈다. 장 부회장은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종전 중국 학계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을 메운 저서로 평가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복이 불로초를 구하러 한반도에 왔다는 건 한국인에겐 상식이지만, 중국인에겐 그렇지 않다.

장 부회장이 처음 지인들에게 『서복과 한반도』를 쓴다고 했을 때 대부분 "서복은 일본에 간 것까진 아는데 한국과는 무슨 관계냐"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수교가 빨라 학술교류가 일찍부터 활발했던 일본과의 관련성에 중국 학자들의 연구가 집중되는 바람에 일어난 현상이다.

장 부회장은 장쑤성 롄윈강(連雲港) 시립방송국장 등을 지낸 전직 관료다. 그는 롄윈강이 서복의 고향이란 인연으로 서복 연구에 빠져들게 됐다. 그러던 중 관심 영역이 넓어져 199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제주도와 경남 남해·거제 등 서복의 발자취가 어린 곳을 여러 차례 답사했다. 서귀포 정방폭포의 절벽이나 남해 금산, 거제도 해금강 등엔 "서복 이곳을 지나가다"라고 새겨진 석각이 남아있다.

또 조선시대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등 한국에 남아 있는 관련 기록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는 사이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 작고한 홍순만 제주도 서복학회 이사장 등과의 교분이 깊어졌다.

장 부회장은 "제주도 서복공원에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의 친필 글씨를 새긴 각석(刻石)이 서 있고, 시진핑(習近平)주석도 저장성 당서기 시절에 이곳을 다녀갔다"며 "2200년 전의 고대 위인 서복이 지금도 한·중 양국을 이어주는 가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복의 행적을 좇는 장 부회장의 답사는 일본으로까지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서복 일행이 오곡 씨앗을 휴대했다는 기록을 토대로 도작(稻作)문화를 전한 주인공으로 보기도 한다. 장 부회장은 "서복을 매개로 한 한·중·일 3국의 문화교류사는 오늘날 많은 교훈을 주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세 나라가 힘을 모아 유적지와 기록 등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무형문화재에 등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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