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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성질 죽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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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성질 죽이기'의 원제는 '앵거 매니지먼트(Anger Management)'다. 분노를 다스려 치료한다는 뜻이다.

주인공 데이브(애덤 샌들러)는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렸다는 오해를 받아 앵거 매니지먼트를 받으라는 판결을 받는다. 그런데 담당자 라이델 박사(잭 니컬슨)는 치료는커녕 데이브의 여자 친구 린다(마리사 토메이)까지 빼앗으려는 등 이 순둥이 청년의 성질을 건드리기만 한다.

'성질 죽이기'는 제목과 달리 '성질 돋우기'로 치닫는다. 라이델 박사의 치료는 틱낫한 스님의 '화 다스리기'와는 거리가 멀다.

치료를 빙자해 무작정 데이브의 집으로 옮겨와 "난 발가벗고 자는 체질"이라며 옷을 홀랑 벗은 채 침대에 뛰어들지 않나, 카펜터스의 음악을 "광기와 망상으로 가득 찬 음악"이라며 금지하질 않나. 소중한 여자 친구 린다마저 그의 손아귀에 넘어갈 지경이다.

이 영화는 이렇듯 역전된 상황이 릴레이 경기의 바통처럼 이어진다. 라이델 박사와 데이브의 가학-피학적인 관계는 데이브가 일정 기간(30일)이 지나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기에 더 끈질기고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 영화의 웃음은 대부분 이러한 아이러니에서 나온다. 다리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부르는 '아이 필 프리티(I Feel Pretty)'는 이런 역설적 상황이 빚는 유머의 극대치다.

그러나 역설이 빚어내는 웃음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라이델 박사의 '기행'은 거듭될수록 어거지 같다. 치료하라고 맡겨진 데이브한테 왜 그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는지가 막바지에 밝혀지지만 코미디 영화니까 그렇다고 눈 감아주기엔 억지스럽다.

캐스팅은 90점이 넘지만 시나리오는 50점을 간신히 넘는다 할까. 미국에서는 비수기인 4월 박스오피스를 독식하는 인기를 누렸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 시장과 테니스 스타 존 매켄로, 우디 해럴슨 등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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