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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고백할 자유와 셀카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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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전수경
화가

오늘 아침 얼굴에 뾰루지가 난 것을 봤다. 속이 상했다. 거울에 입김을 불어 문질러 봐도 뾰루지는 더 선명할 뿐이다. 거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거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끝낸다. 자화상의 제작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에 관한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자화상은 거울 표면 너머의 얼굴을 기록한다. 전통적으로 화가는 자신의 모습과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려 왔다.

 최근 이 전통이 도전받기 시작했다. 셀카 때문이다. 거울의 정밀한 반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관찰하고 그것을 고스란히 그려내는 것은 화가의 영역이었다. 스마트폰의 편리한 장치로 사용자의 모습이 즉석에서 기록된다. 더욱이 그 얼굴은 SNS를 통해 한순간에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멀리 넓게 뿌려지기도 한다. 나는 화가로서 그 영역의 고유한 권리를 주장하기에 힘이 부치고 셀카의 침입에 놀란다.

 자기 자신을 촬영하는 것을 한국어식 영어인 셀프카메라(self camera) 또는 줄여서 셀카라고 부르는데 영어로는 셀피(selfie)라고 한다. 2013년 옥스퍼드대학 출판사가 올해의 키워드로 선정할 정도로 일반화된 단어다. 셀피 문화, 셀피 신드롬에 가세한 것은 2014년 최고의 히트상품 셀카봉이다. 만화 가제트 형사의 팔처럼 연장되는 로봇의수 같은 셀카봉의 등장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의 산물이다.

 최초의 셀카는 일찍이 19세기 초 화학자인 코넬리우스(Robert Cornelius)에 의해서 시도되었다. 현대의 얼짱 각도와 꼭 닮아 있는 그의 셀카가 찍힌 시점이 1839년 최초의 사진인화술 다게레오타입이 프랑스에서 공표된 해와 일치되는 것이 놀랍다. 그는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 후 15분간 정지자세로 있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며 자신의 멋진 모습을 스스로 보존했을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폰의 셀카는 매뉴얼 사진기와 달리 거울 기능을 갖고 있다. 사진기와 결합한 거울은 촬영자를 자화상을 제작하는 화가와 동일한 조건이 되게 한다. 더 나아가 순발력 있는 폰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맘껏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모습이 찍히거나 그려져야만 했다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스스로 사진으로 기록하고 남기는 형태로 진화했다고도 할 수 있다.

 셀카는 이제 사회적 현상을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아름다운 풍경에 머문 한때를 도움 없이 누구나 기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실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곳에서 노출되는 자신을 꾸미거나 과장하는 시도가 줄을 잇는다. 셀카를 위해 특정 식당을 찾고 특정인을 만난다. 셀카를 위해 화장을 하고 심지어 성형클리닉을 찾을 정도다. 사실을 기록하는 셀카에서, 셀카에 사실을 맞추는 격이 된 셈이다. 개인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이 오히려 개성을 통제해 버리는 세월이 되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남겼을까? 아마도 화가를 불러 초상화를 그리게 했거나 아니면 스스로 자화상을 그렸을 것이다. 렘브란트는 어두움에 던져진 자신의 모습을 평생에 걸쳐 100여 점 그렸다. 우리는 20대 청년에서 노인으로 변해 가는 과정을 본다. 그의 자화상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련의 공정과 자기 정체를 찾는 필생의 통찰을 남긴다. 개인을 드러내는 고단한 투쟁을 통해 렘브란트는 화가의 지위를 주장했고 또한 자신이 당당히 한 시대를 살았음을 우리에게 알린다. 미술사의 주요 화가들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노고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그들의 자화상을 통해 말한다. 붕대를 감은 고호의 자화상은 이상적인 모습, 좋은 장소, 좋은 경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통렬한 고통과 치욕을 고백한다.

 맑은 거울을 통해 드러난 아침의 그 뾰루지를 유지한 채 나는 셀카를 찍을 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의 자화상을 통해 고백할 자신은 있다. 미술이라는 영속성의 매체 속에 개인을 녹여 넣어 한때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남기려는 자화상의 전통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셀카를 통해 과장하지 않아도 될 자연스러운 자유가 자화상에는 있기 때문이다.

전수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