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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The New York Times

최고의 조기교육은 놀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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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데이비드 콘
과학 칼럼니스트

20년 전만 해도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조기교육에 시달리지 않았다. 초등 1~2학년생까지도 블록을 쌓고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요즘은 네댓 살 아이까지 초등 5~6학생 수업에서나 접할 수 있는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다. 조기교육을 하지 않으면 수학과 과학·영어 등 핵심 과목에서 평생 뒤처질 것이란 부모들의 공포심 때문이다.

 그러나 주입식 조기교육이 학습 성과를 높인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감정 발달을 늦추고 스트레스만 가중시켜 아이의 학습열을 낮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레슬리대의 낸시 칼슨 페이지 교수는 “조기교육은 아이의 학습 방식을 크게 오해한 결과”라고 역설한다. “학교에 가면 교사들이 아이를 장시간 책상 앞에 앉혀 글자를 베껴 쓰게 한다. 아이는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손만 움직일 뿐이다. 이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주입식 조기교육은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대신 수동적인 정보 소비자만 양산할 것이란 게 페이지 교수의 경고다. 이렇게 발명가 아닌 모방자로 키워진 아이들이 21세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간 미국에선 주입식 조기교육이 급속히 확대됐다. 아동낙오방지법과 ‘1등을 향한 경쟁(Race to the Top)’ 제도의 도입으로 시험이 늘어나고 교사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졌다. 미국 학생들의 수준이 다른 나라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특히 미국 내 평균 성적에도 크게 뒤떨어지는 학생 수백만 명은 빈곤층과 소수민족 출신이 절대 다수다. 조기교육 옹호자들은 “부모가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이런 아이들에게 제도권 교육을 빨리 시작해야 미국 학생들의 전반적 교육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 핀란드나 에스토니아는 아이가 7세가 돼야만 의무교육을 개시하며 주입식 교육도 거의 없다. 그러나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두 나라는 미국을 크게 앞선다. 그것도 수학, 과학, 국어 같은 핵심 과목들에서다. 물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는 미국보다 덩치가 작고 빈부격차도 작다. 미국만큼 국민의 구성이 다양하지도 않으니 교육을 시행하는 데 어려움도 미국보다 덜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에서 의무교육을 7세로 늦춘다면 다른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빈곤한 가정의 유아들은 부모들이 직장에 나간 사이 TV 앞에 멍하니 앉아 하루를 보내게 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지나치게 주입식인 조기교육이 대부분의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 읽기를 조기에 교육하면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짝 효과에 그치는 데 불과하다. 독일 아라누스대가 2009년 50개국의 15세 학생 40만 명을 대상으로 책 읽기 능력을 조사했다. 그 결과, 5세부터 읽기 교육을 받은 학생이 책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은 그보다 수년 늦게 읽기를 배운 학생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교육의 부작용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는 이 밖에도 많다. 미국 북플로리다대는 유치원에서 주입식·학생주도(놀이)식·절충식 수업을 각각 받은 원아 343명을 수년간 추적했다. 초등학교 3~4년생이 된 이들의 성적을 비교하니, 놀이를 통해 배운 학생의 점수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학생의 그것보다 훨씬 높았다. 어릴 때 지나치게 학구적인 방식으로 배운 아이는 평균적인 아이보다 빠른 학습 경험을 한 반작용으로 두뇌 발달이 오히려 저해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놀이 대신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화이트브레드 시카고대 교수는 “놀이는 아무런 성취도 가져다 주지 않는 미성숙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은 아이의 두뇌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아이는 놀이를 통해 끈기와 주의집중, 그리고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과학의 발전으로 아동의 학습 방식에 관해 많은 사실이 알려졌다. 뇌 전문학자들에 따르면 7~8세 미만의 유아들은 주입식 설명 대신 아이 스스로 주위의 뭔가를 탐색하는 것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 이런 아이들에게 주입식 수업을 강요하면 정보 습득 능력이 뒤처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이의 읽기 능력은 부모가 서두른다고 절대 조기에 획득되지 않는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한 기간은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종이에 쓰여진 글자-아이에겐 정체불명의 그림-를 추상적인 의미로 변환시키는 능력은 사람의 뇌에 선천적으로 각인돼 있지 않다. 인간에게 읽기 능력은 저절로 습득되는 직립보행처럼 자연스레 발달되는 재능이 아니란 뜻이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는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거나 빈곤층 아동을 위한 조기교육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조기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의 능력이 발달되게끔 돕는 방향으로 이뤄져야지 그 반대는 안 된다는 의미다.

데이비드 콘 과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