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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할랄’] 2700조원 할랄 시장 잡아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코토미스트]18억 무슬림 구매력 커지며 글로벌 경쟁 치열 … 국내 120개 업체 430개 품목 할랄 인증

국내외를 막론하고 ‘할랄(Halal)’ 바람이 거세다. 아랍어로 ‘(신이 허락하여 인간에게) 허용된 것’을 뜻하는 할랄은 무슬림(이슬람교 신자)들의 삶 전반에 적용되는 이슬람 율법이다. 그러나 이제는 비무슬림 국가에서도 하나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약 23%를 차지하는 18억 무슬림 인구가 2030년께 22억명으로 늘고, 구매력 또한 커질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국내에선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계기로 때아닌 할랄 열풍이 불고 있다. 일찍이 성공 가능성을 예측한 국내 식품 업계에선 할랄 인증 작업이 한창이다. 식품을 넘어 화장품·의약품·관광 등 각종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할랄산업의 규모는 2000조원 대에 이를 전망이다.

서울 한남동 이슬람중앙성원을 찾은 무슬림들이 인근 수퍼마켓을 찾았다. 가게 입구에 할랄 인증 마크가 붙었다. / 사진:오상민 기자

다음 중 할랄(Halal) 식품인 것은? ①라면 ②떡볶이 ③양념치킨. 정답은 모두 다일 수도 있고, 모두 다 아닐 수도 있다. 라면의 경우 스프 원료로 쓴 사골분말이 할랄식으로 도축한 소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면을 튀길 때 돈지(돼지고기 기름)를 썼다면 할랄 식품이 아니다. 그러나 할랄 방식으로 도축된 소에서 나온 우지(소고기 기름)로 튀기거나 동물성 성분 대신 소고기 맛이 나는 향만 첨가했다면 할랄 식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떡볶이와 양념치킨 역시 성분을 모두 따져 할랄 범위에 드는 재료만으로 만든 음식이라면 할랄 식품이 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음식이어도 어떤 원료를 써서 만들었느냐, 어떤 과정을 거쳐 도축을 했느냐에 따라 할랄과 비할랄로 나뉜다. 실제로 국내 식품 업체가 출시한 라면 등 일부는 할랄 인증을 획득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판매 중이다.

세계 식품 시장의 20% 차지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을 뜻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모든 식품·제품을 가리킨다. 그중 할랄 식품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들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말한다. 곡물·채소·과일 등 모든 식물성 음식과 생선·조개 등 모든 해산물이 포함된다. 소·양·닭 등 육류는 이슬람교도가 알라에게 기도한 뒤 단칼에 도살하는 방식으로 도축된 것만 먹을 수 있다. 이와 반대 개념인 하람(Haram)은 ‘금지된 것’을 뜻하는데 비할랄 방식으로 도축되거나, 도축 전 죽은 동물의 고기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개·피·알코올(술)을 금하는데 이런 재료들이 식품 제조 과정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검증하면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다.

2013년 기준 1조2920억 달러(약 1400조3000억원)에 달하는 할랄 식품 시장 규모는 세계 식품 시장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관련 업계는 2019년께 2조5370억 달러(약 2750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다. 전 세계 인구의 약 28%를 차지하며 18억명에 달하는 무슬림 인구의 소비력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까다로운 인증 과정을 거치는 할랄 식품이 곧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며 해외에선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할랄산업에 뛰어든 기업 가운데 비무슬림 글로벌 기업도 다수를 차지한다.

글로벌 식품기업 네슬레는 전 세계 85개 공장에서 150여 가지 할랄 인증 제품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전 세계 할랄 식품 시장의 80%를 글로벌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호주·대만 등 비무슬림 정부에서도 이미 할랄을 ‘산업’으로 인식하고 시장 선점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할랄 농식품 수출액은 지난해 기준 6억8000만 달러(약7300억원)에 불과해 세계 시장의 0.1%가 채 안 된다. 그나마 국내 업체 가운데 120여 개 식품 업체가 430여 품목에 대해 할랄 인증을 획득한 것은 고무적이다. 해외 할랄 시장에는 라면·과자·커피 등 가공제품 위주로 수출하고 있고, 롯데리아와 비비큐·델리만쥬 등 국내 외식 업체 39곳(총 169개 점포)이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을 계기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식품 업계에서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할랄 시장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할랄 농식품 수출액 세계 시장의 0.1%

국내 라면 최초로 자킴 인증을 받은 풀무원 ‘자연은 맛있다’. / 사진:풀무원 제공

풀무원은 2013년 생라면 브랜드 ‘자연은 맛있다’로 국내 라면 최초로 ‘JAKIM(자킴)’ 인증을 획득한 후 이슬람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자킴 인증은 이슬람 국가의 할랄 허브(HUB)를 목표로 범 정부 차원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발급하는 인증이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만큼 발급 절차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풀무원 측은 “자킴 인증을 받기 위해 제품의 원재료는 물론 생산공장과 이슬람 현지 시장 반응까지 전 과정을 분석했다”고 밝혔다.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원재료의 생산·운송·저장 등 전 과정에 대해 돼지고기 DNA 검사를 실시했다. 생산공장 역시 철저하게 관리해 이슬람 율법에서 금한 개·고양이 등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교차 오염을 막아 제품의 신선도와 안전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김태한 풀무원 해외식품담당 팀장은 “애초 할랄 인증 획득에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느라 2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며 “돼지고기나 알코올 등 하람 성분은 포장이 완료된 상태라도 할랄 제품과 혼재가 불가능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할랄 인증 마크를 달고 2013년 11월부터 말레이시아로 수출을 시작한 풀무원 제품은 출시 1년 만인 2014년 말 약 10배 가까운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할랄 라면’의 선전에 풀무원은 앞으로 김과 떡볶이 등 간편식 제품의 할랄 인증 작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연내에 말레이시아를 넘어 인도네시아로의 진출도 준비 중이다.

2013년 3월 자킴 인증을 획득한 CJ제일제당은 현재 재인증 심사 절차에 들어갔다. 햇반·조미김·김치 3개 품목 43개 제품에 대해 할랄 인증을 받은 데 이어, 연내에 제품을 추가할 계획이다. 할랄 인증을 받은 제품은 현재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수출하고 있고, 이를 발판으로 인도네시아와 중동 지역에도 할랄 인증을 받은 한식을 수출한다는 계획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한식 자체가 아직 현지인들에게 생소한 제품이지만 할랄 인증을 통해 믿을 만한 식품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다”며 “한류의 영향으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현지인들의 구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우유·제과 업계도 연이어 할랄 인증을 받고 무슬림 시장 공략에 본격 나서고 있다. 최근 서울우유와 빙그레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정식 수출업체로 등록돼 올 상반기에 처음 유제품을 수출할 예정이다. 빙그레는의 바나나맛 우유와 아이스크림 등 7종의 제품이 할랄 인증을 받았다. 크라운제과와 롯데제과 역시 과자류 제품에 할랄 인증을 받아 제품군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2012년 바게트 등 60여 제품에 할랄 인증을 받은 SPC그룹은 올해 말레이시아에 첫 매장을 열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외국인 1400만여 명 중 무슬림 관광객은 약 75만명으로 추산된다. 방한 관광객을 종교에 따라 집계한 자료가 없는 탓에 출신 국가별 무슬림 인구 비율을 따져 낸 통계 수치로, 실제로는 그보다 적을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서울 이태원 일부 식당과 수퍼마켓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할랄 고기를 취급하는 곳은 거의 전무한 상태다. 이에 방한 무슬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해산물이나 채식 전문점 등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목 생활이 기본이 된 이슬람 문화의 특성상 육류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높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동에서 손님이 오면 고급 일식집에 주로 가는데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며 “다들 불고기나 삼계탕 등 한식을 맛보고 싶어하는데 할랄식 고기가 아니다 보니 먹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학여행 차 한국을 찾은 말레이시아 고등학생들이 현지에서 가져온 음식만으로 끼니를 떼웠다는 웃지 못할 사연도 있다.

풀무원 라면 출시 1년 만에 매출 10배 뛰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한국을 찾는 무슬림 관광객을 대상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업체도 있다. 아워홈은 이슬람 유학생이 많은 국내 한 대학에 할랄급식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이 회사는 오는 7월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할랄 도시락과 뷔페를 제공할 계획이다. 아워홈 관계자는 “9월경 인천국제공항 아워홈 푸드코트에 할랄 코너를 여는 등 방한 무슬림을 먼저 공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선 아직 할랄식품을 판매·유통하는 데 제약이 없다. 다만, 식품위생법상 할랄 인증마크는 부착할 수 없다. 농림축산식품부 측은 할랄 확산을 위해 인증마크 표시를 제한한 식품위생법 조항의 개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잡한 할랄 인증 절차도 국내 업체가 넘어야 할 산이다. 할랄 인증기관도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등 정부기관을 비롯해 종교단체와 사설업체 등을 합하면 전 세계 수백여 곳에 달한다. 국가마다 공신력을 인정해주는 기관에 차이가 있어 특정 기관에서 할랄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 현재까지 할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이슬람중앙회(KMF)가 유일하다. 인증을 받기 위한 서류 작업 등에 최대 2년이 걸리고, 비용이 최대 수천만원까지 들어 중소 식품업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4월 국회에서 열린 ‘할랄산업 활성화 토론회’에 참석한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정부에 인증 절차와 비용 지원, 통합 정보망 구축 등을 요구했다. 할랄 시장 선점이 시급해진 상황에서 국내업체 간에도 관련 마케팅이나 인증 정보를 비밀에 부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대해 한국할랄산업연구원 노장서 연구원은 “말레이시아를 시작으로 최근 동남아 국가들이 국가 차원에서 할랄 인증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우리 기업들 간에 ‘무슬림 네트워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할랄 인증을 받은 뒤에도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꾸준한 마케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오는 8월 7~9일 ‘할랄 엑스포 코리아 2015’가 열린다. 이 자리에는 국내외 100여 개 업체가 참가해 할랄 관련 정보를 공유할 계획이다. 엑스포 조직위원회 맹우승 이사는 “민간에서 개별 기업이 갖고 있는 할랄 시장 공략 노하우를 공유해 이를 DB(데이터베이스)화할 계획”이라며 “정부 각 부처와 민간기업에 분산된 정보를 한데 모아 할랄 산업의 저변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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