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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두뇌싸움 체스·퀴즈 우승한 인공지능…심리싸움 포커·바둑은 인간에게 완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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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달 초 미국 피츠버그에서 벌어진 ‘인공지능 VS 인간’의 포커게임 모습. 1대 1 방식 ‘텍사스 홀덤’으로 맞붙은 승부에서 4명의 포커 선수는 모두 인공지능에 승리했다. [사진 리버스 카지노]

#1997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세기의 체스 대결이 벌어졌다. 챔피언은 15년간 세계 정상을 지킨 가리 카스파로프. 도전자는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딥블루’였다. 1승3무1패로 팽팽하게 맞선 6번국에서 딥블루의 체크메이트에 카스파로프는 수를 낼 수 없었다. 공식 체스 경기에서 인간이 컴퓨터에 무릎을 꿇는 최초의 순간이었다. 딥블루에는 2억 가지 행마를 계산하는 기능과 지난 100년 동안의 주요 체스 대국 기보가 저장돼 있었다. 이후 체스 챔피언들은 컴퓨터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달 초 미국 피츠버그의 한 카지노에선 카네기멜런대학이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클라우디코’와 4명의 포커 선수가 1대 1로 맞붙었다. 4대0, 인간의 완승. 인간의 승리 비결은 이른바 ‘뻥카’로 불리는 ‘블러핑’ 덕분이었다. 좋지 않은 패인데도 강하게 베팅하는 인간의 ‘심리전’을 컴퓨터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클라우디코를 개발한 토머스 샌드홀름 교수는 “인공지능에도 블러핑을 입력했지만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의 발전과 한계를 보여주는 두 가지 사례다. AI의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AI는 정보기술(IT)·과학·의학·예술·언론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얼굴 인식 기술 적용도 이런 영역 넓히기의 하나다. 구글의 ‘페이스넷’은 99.96%, 페이스북의 ‘딥페이스’는 97.25%의 얼굴 인식률을 자랑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인식률(97.53%)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상용화할 경우 각종 금융결제나 보안인증은 물론 범죄자 식별, 영상 감시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얼굴 인식은 ‘딥러닝’이라는 AI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과 유사한 알고리즘을 사용해 컴퓨터 스스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예상한다. 특히 학습을 통해 컴퓨터 스스로 알고리즘을 발전시킨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한 AI 기술로 평가받는다. 페이팔은 고도화하는 온라인 결제 사기를 막기 위해 이런 딥러닝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네이버·다음카카오 등에서 쓰이는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도 이를 활용했다.

 ‘AI 비서’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10’에 ‘코타나’를 장착한다. 예컨대 e메일에 항공권이 있으면 해당 항공기의 출발 시간이 변경됐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알려준다. IBM의 ‘버스’는 회의 참석자의 일정을 분석해 최적의 시간에 회의실을 예약하고 안내장을 각자에게 발송한다.

 얼마나 인간처럼 비슷하게 대화하는지 측정하는 ‘튜링 테스트’를 최초로 통과한 러시아의 AI 프로그램 ‘유진 구스트만’, 커피 머신 판매점에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로봇 ‘페퍼’ 등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AI 개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에서 개발된 AI 프로그램 ‘도다이’는 지난해 대입 모의고사에서 영어·수학·세계사 등 7과목에 응시해 900점 만점에 386점을 받기도 했다. 일본의 중위권 사립대학에 합격할 만한 성적이다.

 이 같은 AI의 발전 속도를 두고 경계론이 나온다.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AI가 100년 안에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주장했고, 테슬라 모터스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현존하는 가장 큰 위협은 AI”라고 경고했다.

 실제 특정 영역에서 AI는 인간을 따라잡았다. 체스·장기 같은 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게임은 예측 가능한 수많은 정보가 축적된 상태에서 인간이 두는 수에 따라 최선의 수를 고른다. 두뇌를 겨루는 다른 분야인 퀴즈도 비슷하다. 2011년에는 IBM의 ‘왓슨’이 미국의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했다. 정형화된 문제 스타일에 발전한 음성인식 기술, 축적된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AI가 인간처럼 정신·의식을 갖고 사고(思考)하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는 게 AI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심리전이 필요한 포커와 같은 도박이나 체스와는 게임 방식이 다른 바둑도 마찬가지다. 계산할 수 없는 변수와 불확실한 정보가 많기에 알고리즘을 짜기가 쉽지 않다.

 목진석 9단은 “바둑은 상대방의 말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빈칸을 채워 나간 뒤 집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식이어서 알고리즘을 만들기 어렵다”며 “무한의 수가 생기는 ‘패’라는 것이 있고, 두터움·기세처럼 AI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많다”고 설명했다.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송대진 교수는 학술지 ‘뉴로퀀톨로지’에 AI의 한계를 ‘의식의 계산 불가성’이라는 이론으로 증명했다.

 송 교수는 “인간의 의식세계는 컴퓨터가 계산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며 “AI가 인간의 지능을 흉내낸다고 하더라도 생각·의식 자체를 가지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도다이’의 영어 점수는 상당히 좋았다. 특히 ‘빈칸 채우기’ 문제의 정답률이 높았다. 그러나 수학·세계사 등은 저조했다. 사진·그림을 해석하는 문제나 좌표에 곡선을 그리는 함수 문제 등은 손도 못 댔다.

 경희대 경영학부 이경전 교수는 “AI의 인식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과 같은 추론은 아직 먼 얘기”라며 “AI는 데이터가 있어야 학습이 가능한데 인간의 자아의식을 가지려면 어떤 형식으로 데이터를 줘야 할지 정의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AI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가전제품·자동차·웨어러블에 사용하면서 사물인터넷으로 묶게 될 경우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중국·유럽의 주요 IT 기업은 AI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장우석 연구위원은 ▶자율 주행 자동차▶지능형 로봇▶지능형 감시 시스템▶지능형 교통 제어 시스템을 AI를 활용한 4대 산업으로 지목하며 “AI의 활용 범위가 넓어질 것에 대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S BOX] 2차대전 때 독일군 암호 푼 튜링, AI 테스트 기준 만들어

인공지능(AI)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앨런 튜링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실제 모델인 영국의 천재 수학자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암호 시스템 ‘에니그마’를 풀어내는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1952년 당시 범죄로 여겨지던 동성애로 유죄판결을 받아 화학적 거세 조치를 받았다. 54년 41세 나이에 청산가리를 묻힌 사과를 베어 물고 사망했다.

 그는 50년 ‘컴퓨팅 기기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란 논문에서 AI의 기준을 제시했다. 여기서 나온 개념으로 만든 것이 ‘튜링 테스트’다. AI가 심사위원들과 5분간 온라인 채팅을 한 뒤 심사위원 30% 이상이 AI인지를 알아내지 못하면 합격 판정을 내린다. 그가 개발한 ‘튜링 머신(Turing machine)’이라는 계산 기계는 디지털 컴퓨터의 원형으로 꼽힌다.

 컴퓨터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ACM 튜링상’은 그의 공헌을 기리고 있다. 미국 애플의 사과 모양 로고가 튜링의 사과를 뜻한다는 말도 있다. 애플이 공식 부인했지만 이런 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요절한 천재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리라.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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