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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맡고 권한도 센데 … 지방정부는 홀로 못서는'캥거루 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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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한국의 군이나 일반시)가 연방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았다.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돈으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16억 달러의 손해를 봤기 때문이다. 주민들한테 걷는 세금으론 막아낼 수 없는 규모였다. 미국의 카운티 중 다섯째로 인구가 많고 전통적 부촌인 오렌지 카운티의 파산은 단체장의 부실행정 때문이었다. 파산된 카운티는 모든 의사 결정권을 연방정부에 반납했다.

한국의 234개 일반시.군.구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중앙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지방정부는 부도 가능성이 거의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들의 재정 운용에 개입하는 데다 사실상 지급보증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의 개입과 보증이 없다면 일반시.군.구의 신용은 뚝 떨어진다. 신용평가회사와 회계법인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다수의 지방정부들이 자체 재원으론 직원 봉급조차 주지 못하는 상태라는 점을 지적한다. 보유 자산을 활용하겠다는 의욕과 능력도 일반 회사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친다고 한다.

중앙일보가 신용평가사와 회계법인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직원 1811명의 전주시와 직원 875명의 GS홈쇼핑의 예산을 비교 분석해 봤다. 중앙정부의 보증이 없는 걸 전제로 했다. 주민의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전주시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GS홈쇼핑을 평면 비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지방정부가 예산을 얼마 만큼 효율적이고 믿음직스럽게 운영하는지를 냉정하게 뜯어 볼 수는 있다.

전주시는 2004년 재정자립도가 52%로 전체 지방정부의 평균 57%와 비슷하다. 재정규모가 4848억원으로 77개 일반시의 평균 예산 3025억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식회사 전주시'의 신용평가 등급을 'B등급'대로 평가했다.

보통 B등급대엔 우량한 순서대로 'BBB' 'BB' 'B'의 세부 단계가 있다. 보통 은행들은 'BB'이하의 등급을 받은 기업을 '부실징후기업'으로 보고 대출을 까다롭게 한다. 한국 정부의 신용평가 등급은 'A등급'대다. 전주시는 정부로부터 지난해에 '지방행정 혁신상'을 받는 등 우수한 자치단체로 평가받고 있지만 중앙정부보다 4~6단계 낮은 신용등급에 위치해 있는 셈이다.

◆ 겉으론 안정성 있지만=기업의 안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는 빚이다. 전주시의 빚은 2115억원, 순자산은 2조1243억원이다. 순자산에서 빚이 차지하는 부채비율은 9.9%다. 한국 모든 산업의 평균 부채비율 114%에 비하면 훨씬 낮다(한국은행의 기업경영분석 2004 기준). 무차입 경영을 한다는 코스닥 등록업체 GS홈쇼핑보다도 부채비율이 낮다. 2004년 매출이 5052억원으로 전주시 재정규모와 비슷한 GS홈쇼핑은 부채비율이 87%다.

문제는 외부에서의 재정지원이다. 전주시는 2004년에만 국고보조금.지방교부세 등 명목으로 중앙정부와 전라북도에서 290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지난 10년간 받은 보조금은 2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보조금을 빌려 쓴 돈으로 보면 전주시의 10년 누적 부채비율은 100%가 넘는다.

보조금은 이익을 추구하는 일반 기업의 회계에는 없는 개념이다. 기업이 부족한 돈을 구하려면 차입이나 주식 발행 등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는 중앙정부로부터 필요한 돈을 받아쓰고 있다. 한국의 지방정부들은 다 커서도 부모(중앙정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인 셈이다.

◆ 투자효율은 낮아=현금이 과도하게 많다. 부채에 대한 현금의 비율(현금비율)의 경우 전주시는 620%에 달한다. 반면 사업의 성격상 다른 업종보다 현금비율이 높은 GS홈쇼핑은 51%밖에 안 된다. 한국 전체 산업의 평균 현금비율은 28%에 불과하다.

현금비율이 높을수록 단기 빚을 갚을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현금을 보유해 투자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갑자기 갚아야 할지 모를 빚은 163억원에 불과한데 현금은 1009억원이나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돈을 1년짜리 정기예금에 넣어 두면 금리가 4~5%라고 할 때 매년 40억~50억원을 벌 수 있다.

이윤원(경영학) 동아대 교수는 "기업 관점에서 보면 지방정부의 예산집행은 대단히 비효율적"이라며 "단체장들이 경영마인드를 갖춰야 지역살림이 튼실해 진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전영기(팀장).이재훈.양영유.김창규.전진배.이가영 기자, 신창운 여론조사 전문위원

◆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와 비교해 지방정부라 부르기도 한다. 광역단체와 기초단체로 나눠진다. 광역단체는 '시.도'로, 기초단체는 '시.군.구'라고 통상 표현한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구분할 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이런 공무원식 무성의한 표현도 지방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을 낳는 요인이다. 대다수 국민은 광역단체의 시와 기초단체의 시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모른다. 서울특별시의 강남구청장은 선거로 뽑는데, 경기도 성남시의 분당구청장은 왜 뽑지 않고 임명하는지 잘 모른다. 지방정치는 중앙정부의 대통령과 국회의원처럼 단체장과 지방의회로 역할과 책임이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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