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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백수오 파문으로 드러난 증권사의 민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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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선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17번. 가짜 백수오 파문에 휘말린 내츄럴엔도텍이 지난달 22일 이후 지금까지 하한가를 기록한 횟수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직전인 지난달 21일 주당 8만6600원이던 주가는 이달 18일 8550원으로 10분의 1 토막이 나더니 19일엔 상한가를 기록했다. 호떡집에 불이 나도 단단히 났다. 이쯤 되면 기업분석보고서를 내는 증권사도 덩달아 호들갑을 떨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최근 6개월간 이 호떡집을 가지고 17개의 조사분석보고서를 쏟아내며 매수를 추천해 온 증권사들은 어쩐 일인지 잠잠했다. 지난달 23일 내츄럴엔도텍이 애널리스트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콘퍼런스콜까지 진행했지만 관련 보고서를 내고 투자 의견을 조정한 건 삼성증권과 노무라금융투자뿐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사이 내츄럴엔도텍 매매에 개인투자자들이 뛰어들며 거래량은 급증했다. 평소 30만~50만 주 거래되던 게 4687만 주까지 늘었다. 주식 위탁 매매 서비스를 하고 수수료를 받는 증권사 브로커리지 부문은 돈을 벌었단 얘기다. 한쪽에선 전문가 조언이 가장 필요한 순간 투자자의 손을 놓아 버렸고 다른 한쪽에선 그 덕에 수익을 올린 셈이다.

 한 대형사 애널리스트는 “문제가 생기면 조용히 있는 게 관행이자 회사의 비공식적인 방침”이라고 고백했다. 법적 문제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언론의 관심이 높아 관련 보고서를 썼던 증권사들이 뒤늦게 내츄럴엔도텍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안 하는 게 관행이란다. 그는 “해명 차원의 보고서 한 장 쓰지 않고 발을 빼는 건 비겁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자조했다.

 관행은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자라는 법이다. 지난 15일에야 증권사 준법감시인을 불러 보고서 사후 관리 강화를 당부한 금융감독원 측은 “조사분석보고서 작성 및 관리는 업계 자율 규제에 맡기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한국금융투자협회 측은 “1년에 3회 이상 보고서를 작성한 종목에 대해 6개월 이상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해당 내용을 공표하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이 규정이 지켜지는지 주기적으로 확인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단기적 수수료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고객 수익을 최우선에 둔 선진 금융사로 거듭나겠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갇힌 최근 몇 년 업계 불황이 심해지자 증권사들은 이런 명분을 앞세워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벌였다. 그러나 이번 가짜 백수오 파문에서 드러났듯 말뿐이었다. 주가가 오를 땐 매수추천보고서를 쏟아내 개인투자자의 주머니를 열게 하더니 정작 문제가 터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거래 수수료만 알뜰하게 챙겼다. 우리가 본 증권사의 민낯이다.

글=정선언 경제부문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