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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루이 14세와 카사노바가 즐긴 푸아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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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 니콜라스가 만든 푸아그라 옥수수빵을 맛보는 라보리 부인.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의 푸아그라입니다.

거위의 간으로 만든 요리 푸아그라(Foie Gras)는 캐비아·트러플(송로버섯)과 더불어 세계 3대 진미로 꼽힙니다. 소문난 미식가였던 프랑스 전 대통령 미테랑도 즐겨 먹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서 푸아그라는 정치와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웠던 대통령이 유일하게 누린 호사를 상징합니다. 엘리제궁의 요리사로 발탁된 영화 속 라보리 부인은 대통령의 입맛과 마음을 모두 헤아리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음식을 먹고 해맑게 웃는 대통령의 얼굴이 인상적이죠.

#1 매년 5월 미테랑 대통령은 연회장에서 만찬을 연다. 가족과 친한 친구만 초대하는 행사로 1년 중 대통령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날이다. 그는 이 특별한 행사를 위한 메뉴를 라보리 부인과 상의한다. 대통령이 그녀를 불러 메뉴를 직접 상의하는 건 처음이다. 부인은 대통령에게 최고의 만찬을 선사하기로 결심한다. 메뉴를 구성하고 그 메뉴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실습을 거듭하느라 밤늦게까지 주방에서 일한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는 진귀한 식재료가 다양하게 등장하다. 푸아그라가 그중 하나다. 라보리 부인은 대통령의 특별 만찬을 위해 푸아그라 옥수수빵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라보리 부인: 만찬은 와인 젤리를 넣은 푸아그라와 옥수수빵으로 시작해요. (조수를 향해) 니콜라스, 옥수수빵은 골고루 맛보고 푸아그라에 어울리는 것을 찾아내.

니콜라스는 푸아그라 옥수수빵 요리를 만들어 부인에게 여러 번 가져가지만 부인에게 합격점을 받지 못한다. 만찬 직전 니콜라스가 밝은 표정으로 부인에게 뛰어간다. 푸아그라 옥수수빵을 맛본 부인의 표정이 환해진다.

라보리 부인: 어떻게 만들었어?
니콜라스: 빵은 꿀과 샤프란(향신료)을 조금 넣어 만들었어요. 꿀의 당도가 푸아그라와 잘 어울리거든요.
라보리 부인: 맛있네.
니콜라스: 푸아그라와 환상의 궁합이죠!
드디어 만찬 메뉴를 성공시켰다는 기쁨에 둘은 마주보며 환하게 웃는다.

왼쪽부터 구운 푸아그라를 얹은 빵, 푸아그라 테린(여러 가지 고기를 섞어 쪄낸 것)을 얹은 빵, 푸아그라 무스를 얹은 빵. 소스, 체리, 무화과 잼 등을 곁들여 먹는다. [김경록 기자]

캐비아, 트러플과 함께 세계 3대 진미 꼽혀
한국선 냉동 캔 판매...달콤한 와인과 궁합
억지로 거위 간 부풀리는 생산 방식은 금지

왕이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기록은 지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대중은 권력자의 식탁을 궁금해한다.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미식국가 프랑스의 대통령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

 올 초 개봉했던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대통령의 식탁을 가까이서 관찰한 영화다.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에서도 미식가로 손꼽히는 프랑수아 미테랑과 2년 동안 그의 전속 요리사로 일했던 다니엘레 델푀(극 중 라보리 부인, 캐서린 프로트)의 실화를 다뤄 화제가 됐다.

 엘리제궁의 요리사로 발탁된 라보리 부인은 사람들의 시샘을 받는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트집 잡는 사람들뿐이다. 라보리 부인의 요리에 감동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미테랑 대통령(장 도르메송)이다. 미테랑 대통령은 영화 중반, 한밤중에 라보리 부인의 부엌을 찾는다. 그늘진 표정과 무거운 어깨로 식탁에 앉아 그녀에게 묻는다. “사람들 때문에 힘들죠?” 둘 다 일과 상관없는 주변 상황 때문에 극도로 피로한 상태다. 그녀는 말없이 대통령을 위해 와인과 안주를 대접한다. 음식으로 대통령을 위로한다.

 실제로 미테랑 대통령의 미식 수준은 대단했다. 영화 중에서도 식재료를 줄줄 읊고 요리책을 소설책처럼 읽었다는 대사가 나온다. 실제로 그가 즐겨 먹은 대표적인 식재료가 푸아그라다. 푸아그라는 살찐 또는 기름진 거위의 간을 뜻한다.

 푸아그라의 기원은 이집트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거위가 과식을 하면 간에 살이 찌면서 지방을 축적한다는 걸 발견했다. 음식문화평론가 윤덕노씨가 쓴 『음식잡학사전』에서는 당시 이집트 노예로 일했던 유대인이 이 기술을 유럽 대륙에 전했다고 설명한다. 현재 최고급 푸아그라로 유명한 산지는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와 남부 페리고르다.

 지방과 단백질로 이뤄진 푸아그라는 더 큰 것, 더 살찐 것이 고급이다. 이 때문에 거위 목에 튜브를 꽂아 강제로 먹이를 주입함으로써 간을 5~10배로 부풀리는 방법도 쓴다. 비인도적인 사육 방식 때문에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푸아그라용 거위 사육을 금지했다. 최근에는 방목한 거위의 간으로 푸아그라를 만드는 인도적인 방식의 농장도 생겨났다. 하지만 여전히 푸아그라는 동물학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식재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푸아그라를 ‘칭송’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 이유는 맛이다. 캐비아의 매력이 톡톡 터지는 식감, 트러플의 매력이 아찔한 향이라면, 푸아그라는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가장 큰 매력이다. 품질에 따라 A·B·C·D 등급으로 나뉘는데 A등급은 ‘버터처럼 녹아내린다’는 평을 듣는다. 루이 14세, 카사노바, 알렉산드르 뒤마가 푸아그라에 탐닉한 대표적인 역사 속 인물이다.

 미국 뉴욕에 ‘블루힐 앳 스톤 반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푸아그라 애호가 댄 바버 셰프는 테드(Ted) 동영상을 통해 푸아그라의 맛을 이렇게 표현했다. “기막히게 맛있죠. 요리사라면 포기할 수 없을 겁니다. 기름지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복합적인 풍미를 지녔거든요.”

 푸아그라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푸아그라 외에 아무것도 섞지 않은 건 ‘앙티에르’라고 부른다. 푸아그라를 98% 이상 함유한 건 ‘블록 드 푸아그라’, 75% 이상 함유한 건 ‘파르페 드 푸아그라’라고 부른다. 발라 먹기 좋은 부드러운 형태를 부를 땐 ‘무스 드 푸아그라’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청담동 SSG, 갤러리아백화점 ‘고메이494’ 같은 고급 식료품 매장에서 캔 형태의 푸아그라를 판매한다. 캔 제품은 대부분 푸아그라와 다른 육류를 반반씩 섞어서 만든다. 푸아그라는 국내에 냉동 상태로 수입된다. 냉장 상태에서는 지방이 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스토랑 ‘톡톡’의 김대천 셰프는 “푸아그라를 요리할 땐 진공 상태의 포장지를 벗겨내고 쿠킹 호일로 싸서 빛을 차단하라”고 조언한다. 맛과 색이 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캔으로 포장된 푸아그라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브랜드는 ‘루지에’로 8만~10만원 정도다.

 푸아그라 요리법은 단순하다. 박찬일 셰프는 “팬에 굽는 것이야말로 푸아그라 고유의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거친 빵 위에 얇게 자른 푸아그라를 올려 먹는 경우가 많다. 이때 빵에는 버터·꿀·포도주 등을 섞어서 만든 소스가 어울린다. 영화 속 라보리 부인의 만찬 메뉴인 딥(dip) 소스가 대표적이다.

레스토랑에선 푸아그라를 활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프렌치 레스토랑 ‘루이쌍끄’의 푸아그라 요리 ‘테린’은 셰리주와 브랜디에 절인 푸아그라를 오리고기, 돼지어깨살과 함께 베이컨으로 감싸 쪄낸다. ‘비스트로 욘트빌’의 ‘푸아그라 팟’은 푸아그라와 삼겹살·돼지족발·오리기름을 팟(냄비)에 넣어 중탕으로 오븐에서 익힌 요리다.

 푸아그라와 어울리는 건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다. 와인 바 ‘뱅가’의 김준근 소믈리에는 푸아그라와 가장 어울리는 와인으로 프랑스 소테른 지역에서 나는 디저트 와인을 꼽았다. “디저트 와인은 부패한 포도의 당을 농축해서 만든다. 다소 느끼할 수도 있는 푸아그라의 맛이 달콤한 와인을 만나 부드럽게 중화된다”고 설명했다.

 1981년과 88년 두 번에 걸쳐 대통령을 역임한 미테랑은 96년 전립선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죽기 직전인 95년 12월 31일, 그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만찬에 나온 네 가지 메뉴 중 하나가 푸아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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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프랑스 유학 시절 팩소주 안주
내 인생 첫 푸아그라였죠

1990년에 파리로 유학을 갔습니다. 한국의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 생활하는 가난한 유학생 부부였지요. 유일한 사치는 중국 식당에서 볶음밥을 먹는 정도였습니다. 최고의 호사는 한국에서 가져온 팩소주에 마늘 안주를 먹는 거고요. 세계 3대 진미라는 푸아그라는 유명한 프랑스 요리라지만 그때의 저에겐 먼 나라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 한국에서 온 상사의 가이드를 해준 선배가 푸아그라 캔 하나를 선물 받았다며 연락을 주셨습니다. 얻어 온 푸아그라 캔을 아내와 함께 팩소주 안주로 먹었습니다. 젓가락으로 스팸을 먹듯 푸아그라를 먹었죠. 그게 제 인생의 첫 푸아그라였습니다. 푸아그라의 진가를 모르던 우리 부부는 그때 ‘순대 간과 다를 게 뭐가 있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지요.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잘 모르면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거니까요. 한국에 돌아온 뒤 종종 집으로 지인들을 초대해 파티를 엽니다. 푸아그라와 에스카르고(달팽이)는 빠지지 않는 제 파티 음식이죠. 하지만 푸아그라 캔을 소주와 함께 먹던 그 유난히 추웠던 겨울밤이 지금은 그립습니다. (성태복·53·분당 구미동)

▶서울에서 푸아그라로 유명한 레스토랑

서울에서 푸아그라로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3곳을 소개합니다. 이윤화 다이어리알 대표, 정석영 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SOPEXA) 소장, 김종희 롯데호텔 피에르 가니에르 조리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루이쌍끄

“밤늦게 가도 맛있는 프랑스 안주를 먹을 수 있다.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편한 분위기다”

○ 특징: 프랑스·스페인에서 요리를 공부한 이유석 셰프가 2010년 문을 열었다. 오픈 키친과 바가 있는 활기찬 비스트로(선술집) 스타일. 새벽 1시까지 문을 열어 늦은 시간 더 붐빈다. 프랑스인들이 즐겨 먹는 가정식 안주가 많다. 보리 리소토로 속을 채워 오븐에서 구운 메추리 요리가 유명하다. 구운 느타리버섯·하몽(스페인산 햄)·수란(살짝 익힌 달걀)을 차례대로 쌓은 ‘보케리아’는 와인 안주로 그만이다.
○ 가격: 8800~4만6000만원대, 푸아그라 테린 2만7500원
○ 영업 시간: 오후 6시~오전 1시,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547-1259
○ 주소: 서울 강남구 선릉로157길 33 (신사동 657) 2층
○ 주차: 발레 파킹

라 싸브어

“5층이라 탁 트인 창밖을 감상하기 좋다.
정통 프렌치 요리부터 브런치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 특징: 2002년 진경수 셰프가 문을 연 정통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리뉴얼해서 같은 동네의 다른 건물에 문을 열었다. 5층에 위치해 서래마을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감상하기 좋다. 입구의 정원을 지나면 프랑스 가정집 같은 아늑한 홀이 등장한다. 메뉴는 코스로 구성한 점심 브런치, 저녁 코스 요리가 있다. 매달 식재료 구성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달의 코스’가 인기다. 입맛을 돋우는 아뮤즈 부슈, 전채, 메인, 디저트로 구성한다. 킹크랩 수프, 시금치 페투치네(파스타의 일종) 같은 요리가 포함된다.
○ 가격: 2만5000원(브런치), 6만~13만원대(코스)
○ 영업 시간: 오전 11시 반~오후 3시 반(브런치), 오후 5시 반~10시
○ 전화번호: 02-591-6713
○ 주소: 서울 서초구 서래로 24(반포동 90-10) 다솜빌딩 5층
○ 주차: 발레 파킹

수마린

“셰프가 꾸민 화려한 인테리어가 압도적이다.
뛰어난 음식 스타일링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 특징: ‘봉에보’ ‘라카테고리’ 등 인기 프렌치 레스토랑을 성공시킨 이형준 셰프의 공간. 꽃·조명·조형물을 절묘하게 배치해 화려하고 감각적인 분위기다. 등받이가 연결된 2인용 암체어가 있는 자리는 연인과 오붓하게 식사하기 좋다. 아보카도 퓨레에 염장 연어를 곁들인 단품 요리가 꾸준히 인기다. 푸아그라·포르치니버섯·표고버섯을 마카로니에 채워 오븐에 구운 요리도 평이 좋다.
○ 가격: 7000~4만5000원(단품), 3만5000~11만5000원(코스), 푸아그라 테린 3만8000원
○ 영업 시간: 낮 12시~오후 3시, 오후 6시~11시,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2-790-0814
○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20길 47-24(한남동 31-3) 지하 1층
○ 주차: 발레 파킹

글=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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