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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 “위안부는 일본군의 인신매매” 가해자 명시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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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접견했다. 케리 장관은 이날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군이 성적인 목적으로 여성들을 인신매매한 것과 관련해 미국은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이는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18일 오후 1박2일 방한 일정의 마지막에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장병들과 만나 미 국무장관으론 처음으로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선 사드의 ‘T’자도 나오지 않았다. 사드 배치 필요성을 언급한 게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다방면적인 대비가 필요하다는 일반론을 편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를 작게 해석했다. 그러나 단어 하나가 외교적 논란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미 국무장관이 방한 마지막 공개 석상에서 던진 발언인 만큼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지난 3월 방한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가 “사드에 대한 중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요시해달라”고 표명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2개월의 시차를 두고 미·중 외교 당국이 서울에서 간접 충돌했다는 의미도 있다.

 케리 장관의 이날 발언은 주무 장관인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언급과 온도 차가 있다. 카터 장관은 지난달 한·미 국방장관 회담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현재 세계 누구와도 아직 사드 배치를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배치 시기도 생산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사드 논란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이후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사드 논란이 케리 장관의 발언으로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자 주한 미 대사관도 자정 가까운 시간에 급히 입장을 내고 진화에 나섰다. 대사관 측은 “이번 케리 장관의 방한에서는 물론 지금까지 한·미 사이에 사드 문제가 공식 논의된 적이 없다. 오늘 용산 기지 방문은 미군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행사였으며 우리는 북한의 위협을 계속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한·미 외교·국방부 당국자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날 케리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미국 국내에서 최근 한 달 사이에 모종의 입장변화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물론 한국 정부는 사드는 결정된 바도, 제안을 받은 바도, 논의한 바도 없다는 소위 ‘3NO’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관련, 케리 장관은 이날 “우리는 그(김정은)에게 지금 걷고 있는 미사일·핵 개발의 길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더 큰 압박과 제재를 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대해선 “또 하나의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사드 문제와 달리 케리 장관은 이날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언급하며 가해자를 “일본군”이라고 특정했다. 케리 장관은 “‘일본군이 성적인 목적으로 여성들을 인신매매한 것’과 관련해 미국은 여러 차례 입장을 밝혔다. 이는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끔찍하고 지독한’이란 표현은 지난해 4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썼다. 하지만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인권침해를 저지른 가해자를 일본 정부 혹은 일본군이라고 명시하진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통상 미 정부가 인신매매라고 할 때는 성노예란 개념도 포함하고는 있지만 미 국무장관이 일본군의 책임을 적시한 것은 처음”이라고 풀이했다. 이 발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달 미국을 방문했을 때 위안부 피해를 단순히 인신매매라고만 표현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케리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신 미·일 동맹을 계기로 한국에서 한·미 동맹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걸 의식한 조치였다고 한다. 실제로 케리 장관은 회견에서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며 “한·미 간 대북공조는 1인치, 1㎝의 빛이 샐 틈도 없다”고 강조했다. 회담 모두발언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동맹(real alliance)’이라고도 표현했다.

 케리 장관은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과 관련, “한국과 관련된 문제에서 한국이 동의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국제법에 어긋나고, 따라서 애초부터 이런 일은 시도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정용수·유지혜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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