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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160년 항구·파리 2000년 역사·뉴욕 스카이라인 … ‘걷는 서울’ 정체성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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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어벤저스2’에는 서울이 20분 넘게 등장한다. 한강 세빛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문래동 철강거리, 강남대로 등이 배경으로 나온다. 하지만 서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면은 거의 없다. 할리우드 제작진도, 서울시민도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 제대로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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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계획의 석학 케빈 린치는 “잘 알려진 도시는 대개 ‘강력한 공공 이미지(Public image)’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런던·파리·뉴욕·도쿄·홍콩 등 도시의 이름을 대는 순간 자연스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런 도시의 공공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길(path)’이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재직했던 정수복 박사는 “도시의 길을 걸으며 누적된 시간의 연속성을 체험할 수 있는 파리와 각각의 랜드마크가 시간적으로 단절돼 있는 서울이 만들어내는 이미지 차이는 대단히 크다”며 “보행도시는 시민과 방문자가 공유할 수 있는 스토리와 이미지, 즉 정체성 확보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예로 들었다. 길의 남쪽에는 1190년에 지어진 루브르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서 출발해 개선문(1806년 건립)을 지나 북쪽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신개선문’ 그랑드 아르슈(Grand arche)가 나온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1989년 완공됐다. 중세(루브르 박물관)·근대(개선문)·현대(그랑드 아르슈)의 대표 건축물이 하나의 길에 놓인 것이다.

 요코하마는 도시의 정체성이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1970년 일본 정부는 도시 팽창에 대응하기 위해 도쿄와 요코하마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요코하마의 기능을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규정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요코하마가 반기를 들었다. 요코하마시는 도쿄와 다른 색깔을 지닌 도시 건설을 목표로 세 가지 원칙을 세운다. ▶도시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역사적 건물을 보존하고 ▶걸어서 즐거운 도시로 조성하고 ▶더 많은 사람이 찾는 도시로 거듭난다는 내용이었다. 71년 만들어진 도시디자인팀(도시디자인실의 전신)은 이런 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최초의 부서였다. 쓰나가와 이사오(綱河功) 도시디자인실장은 “도시의 정체성을 ‘항구’와 ‘보행’에서 찾기 위해 개항 시기 만들어진 유적을 철저히 보존했다”며 “그런 기조 속에 오래된 항만의 창고 ‘아카렌카소코 ’는 도시의 랜드마크가 됐다”고 말했다.

 요코하마의 가장 높은 건물인 ‘랜드마크 빌딩’은 1850년대 개항기에 선박 건조를 위해 만들어진 독(dock)을 보존하면서 그와 어울리는 콘셉트로 건축했다.

 하이라인파크도 뉴욕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데서 출발했다. 맨해튼에서 자생하는 식물의 종자를 고가에 심을 예정이고, 스탠튼섬의 돌로 조경을 완성했다. 하이라인파크의 높이는 7.5m인데, 그곳에선 지상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카이라인과 허드슨강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서울역고가 공원도 서울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는 계획과 함께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서울역고가가 서소문공원은 물론 서울의 오래된 역사문화자원과 어떻게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인식·강기헌·장혁진·김나한 기자 kang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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