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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멋진 한국문학 책 많아 … 미국에 널리 알리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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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그의 기획으로 미국에서 열렸던 사진전 ‘삶의 궤적’ 도록을 들고 있는 이창재 북디자이너. 표지는 사진작가 구왕삼의 1945년 작품이다. [신인섭 기자]

“북디자인은 저자만의 고유한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표지디자인은 책의 내용을 집약해 가장 중요한 느낌이나 분위기를 전하는 것, 이를 위해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시각화하는 것이고요. 이런 의미에서 번역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출판사 이창재(49) 수석디자이너의 말이다. 그는 20~30일 서울 합정동 갤러리 사각형에서 열리는 ‘책을 만들고 보는 열세 가지 방법-컬럼비아대학출판사 북디자인, 1990~2015’를 위해 내한했다. 1893년 창립한 이 출판사가 최근 사반세기에 펴낸 책 중 100여 점을 통해 북디자인의 미학·과정을 선보이는 전시다. 연간 160여 종을 펴내는 대학출판사답게 유럽 철학, 동아시아 문학 등 번역서도 많다. 특히 황순원·박완서·오정희·최윤 등 한국문학 번역서를 포함, 전시할 책의 절반은 이씨가 디자인한 것이다. 그는 “우리 출판사는 미국에서도 한국문학을 많이 펴내온 곳”이라며 “이를 한국에 소개하는 한편 더 많은 한국 작품이 미국에 소개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문화와 문학에 그는 애정이 각별하다. 어린 시절 ‘글쓰는 사람’을 꿈꿨고, 그 무렵 어머니가 사준 『일하는 아이들』 같은 이오덕 선생 책은 지금도 소장 중이다. 중학교 마치고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할 때도 각종 문학전집을 싸갔을 정도다. 대학 시절엔 의사가 되려다가 교양과목으로 접한 미술사에 빠져 회화까지 함께 전공했다. 이후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1996년부터 지금의 출판사에서 일해왔다.

 그의 한국문학서 디자인은 통념과 다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담곤 한다. 예컨대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영역본(2007) 표지는 꽃 대신 김환기 화백의 모던한 추상화를 넣었다. ‘김소월 시에는 도회적이고 어두운 면모도 있다’는 번역자 데이비드 매캔 하버드대 교수의 의견에 그가 떠올린 그림이다. 이런 경우 저작권자를 수소문해 사용허가를 얻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한국어는 잘해도 한국 사정엔 밝지 않은 터라 쉬운 일은 아니다. 재일 작가 김석범 소설 『만덕유령기담』 영역본(2010) 표지에 쓴 1940년대 아이들 사진은 운이 좋았던 경우다. 이를 찍은 사진작가 구왕삼 탄생 100주년 전시가 마침 2009년 강원도 영월 동강사진박물관에서 열린 덕이다. 그는 이 인연을 이어 이 박물관이 소장한 주명덕·최민식 등 여러 작가 사진으로 3년 전 미국에서 ‘삶의 궤적-한국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1945~1992’를 기획해 전시하기도 했다.

 그는 또 다른 방법으로 한국문학, 나아가 출판문화를 미국에 소개하고픈 바람이 있다. 한 편의 서화 같은 표지를 비롯, 디자인이 뛰어난 근대문학서 원본을 전시하는 것이다. “이태준 수필집 『무서록』의 영역본(2009)을 디자인하면서 1941년 초판 표지를 찾아보게 됐는데, 참 멋져요. 한국의 시각문화를 널리 알릴 기회가 생겼으면 합니다.”

글=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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