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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5·18 광주와 그 이후 나와 얽힌 기억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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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

어제 5월 18일에 떠올린 기억이 있다. 부장판사로 승진하며 광주로 내려가 형사재판장을 맡게 되었다. 미제 사건 중에 5·18 관련 재심 사건들이 있었다. 이에 관한 대법원의 결론이 이미 확립돼 있어서 전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광주에서 개시되고 1년이 되도록 아무 진행도 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었다. 재심 대상 사건 기록이 검찰에서 아직 송부되지 않아서였다.

 공판검사를 통해 속히 보낼 것을 요구했다. 시간이 흘렀다. 공문을 정식으로 발송했다. 찾고 있다는 답만 돌아온 채 또 시간이 흘렀다. 기록 관리 실무자와 직접 통화했다. 옛날 기록들이 번호순으로 정리돼 있지 않아 일일이 기록 무더기를 뒤지는 중이란다. 힘들겠지만 더 노력해 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기록들이 도착했다. 실무자가 연일 야근하며 먼지 쌓인 기록 창고를 뒤지고 뒤진 결과였다. 재판을 열어 무죄를 선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건이 고민이었다. 5·18 이틀 전까지 대학 총학생회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항소 중에 옥중 사망한 분의 88세 부친이 신청한 사건이다. 문제는 항소 중에 피고인이 사망하면 1심 판결 효력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법상 재심 대상 자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고민 끝에 다른 재심사건들처럼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결정문을 시작했다. “전두환 등이 1979. 12. 12. 군사반란 후 1980. 5. 17. 비상계엄을 확대선포하여 1981. 1. 24. 해제하기까지 행한 일련의 행위는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범죄로서 형법상 내란죄에 해당하므로, 피고인의 위 행위는 전두환 등의 헌정질서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하는 행위로서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형법상 정당행위이어서 무죄에 해당한다.” 그 뒤에 내용적으로는 무죄에 해당하나 법률상 절차적 이유로 기각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판결 선고와 달리 기각결정은 우편으로 보내게 되어 있다. 고민해서 썼지만 법조인 아니면 이해하기도 어려운 소리에 불과했다. 결국 재판장인 내가 직접 유족들께 전화하여 내용을 설명드렸다. 최대한 상세히 말씀드렸지만 자괴감이 들었다.

 이런 조치들이 부적절했다고 비난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몇 줄짜리 형식적인 기각결정문을 작성하여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법 규정대로의 처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국가가 갖출 예의 말이다.

문유석 인천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