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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창출 실적을 보고 투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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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은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의 초청으로 성사됐다.

 베이너 의장이 왜 아베 총리에게 이런 특혜를 안겼는지, 그 동기는 미스터리다. 단초가 있긴 하다. 동아시아 문제 칼럼니스트인 에몬 핑클턴은 포브스 기고에서 베이너의 결심을 설명하는 것은 ‘돈’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주식회사 일본의 영향력’이다. “미국 내 자동차와 전자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미 의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의원들은 선거 때 지역구 경제 상황으로 평가받는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고 실업률을 낮춘 것이 최고의 실적이 된다. 반대로 일자리가 줄어든 의원들은 의원직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의원들은 지역구 경제를 죽이는 조치라고 판단되면 어떤 당론도 결사 반대한다. 미국 정치 드라마엔 의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때 지역구 일자리로 흥정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할 정도다. 지역구보다 국익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는 호소는 지역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의원들에게 제일 인기 없는 상임위가 외교위원회라는 얘기까지 있다.

 의원들 입장에선 공장을 돌리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외국자본을 무시할 수 없다. 핑클턴의 지적은 일본 주식회사가 미 정치권에 갖는 현실적 파워를 짚은 것이다.

 한 통계 수치가 이해를 돕는다. 오하이오주 소재 일본계 기업에선 2013년에만 2700여 개의 일자리가 늘었다. 전체 일자리는 6만9000여 개. 그중 절반 이상이 자동차산업이다. 오하이오는 베이너의 지역구다. 워싱턴 정가에선 지역구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일본계 기업들이 베이너의 마음을 잡는 데 큰 역할을 했을 거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의원들에게 절실한 부분을 파고드는 일본 주식회사의 노림수는 용의주도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 절실함이 지역구 경제 부흥이라는 사실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경제 성적에 매달리기는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요즘 오바마는 임기 후반에 여소야대 정국을 맞은 대통령 같지 않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이란과의 핵협상을 추진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은 대통령 권력이 최고조에 달한다는 당선 직후를 방불케 한다. 자신감의 원천은 되살아난 경기다. 미국은 10여 년 만에 다시 세계 경제의 엔진 자리로 복귀했다. 일자리 창출 능력은 1999년 이래 최고다. 5.4%의 실업률은 완전 고용 수준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내 청년 실업률이 10%를 넘어섰다. 한국 경제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실업은 미래를 암울하게 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저출산·저소비·고령화 같은 난제를 극복할 방도가 없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이 그저 나온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제일의 화두로 삼는 미국 정치권의 모습은 한국 정치권뿐만 아니라 유권자들도 새겨봐야 할 대상이다. 다음 선거에선 일자리 창출 실적으로 표를 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떨까.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