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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본사 방침이 그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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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지난 화요일. 액정이 깨져버린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폭우 속에서 30분 이상을 헤맸다. AS센터가 무슨 빌딩 2층이라 했는데. 건물 이름을 물으니 지나는 사람마다 모른단다. 한참이나 기다린 전화 연결 끝에 모 통신사 대리점 2층인 걸 알았다. 비를 흠뻑 맞은 채 들어간 센터에는 남자 서너 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가 지연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번호표를 뽑고 한참을 기다려 상담사와 마주했다. ‘기술자가 체크해서 18만원에 액정만을 고치거나 41만원 받고 기계를 고치거나(사실 고치는 게 아니라 대체폰을 준다)’를 정한단다. 2개월 전 비싼 돈을 주고 샀지만 41만원 주고 고칠 바엔 차라리 버리고 싶었다. ‘41만원 들면 고치지 마세요.’ 그러나 내겐 선택권이 없단다. ‘일단 맡기면 액정 바꾸고 그래도 안 되면 주인에게 묻지 않고 무조건 고칩니다.’

 ‘무슨 그런 황당한 방식이…. 기계고장이라면 그냥 두세요.’

 ‘본사 방침이니 안 됩니다. 불만 센터에 연락하세요.’

 거기다가 41만원을 먼저 지불하란다. ‘헐’ 결국 화를 내고 나와서 ‘발레파킹비’ 3000원만 내고 운전석에 앉았다. 비 때문에 앞은 안 보이고. 전화기는 망가져도 할부금은 계속 내야 하고. 운 좋으면 18만원, 운 나쁘면 41만원에 비싼 전화기를 건져? 어쨌든 41만원에 그런 전화기는 못 산다. 다시 차 맡기고 수리점에 들어가 번호표 뽑고 상담하고 41만원 내고 ‘발레파킹비’ 또 주고 나왔다(대리 주차만 가능했다). 열흘 안에 연락한다니 지금은 그들 처분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시원한 빗소리 덕분에 화는 곧바로 누그러들었다. 괜히 상담사에게 화를 냈나. 본사의 방침이 아무리 비합리적이어도 상담사와는 사실 무관한데 말이다. 불쾌함의 본질을 잊었던 게다.

 한국에서 물건을 팔면서 정작 한국 소비자의 정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그 회사 방침. 정말 맘에 안 든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명 카드사, 통신사와 제휴해 이래저래 보조금 주며 연결시켜줘 엉겁결에 산 내 잘못인가. 외국에서 물건을 팔려면 적어도 현지 소비자 특성을 배려하고 그들의 기호에 맞춰주는 것이 기본일 것 같은데….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 회사 방침이 그렇다니 할 말은 없지만 우리랑 맞지 않는 그런 낯선 방식의 AS는 먹다 만 사과처럼 흉한 상처를 내 마음에 남겼다.

 그래도 건진 건 있다. 화날 땐 잠시 머리를 식혀라. 좋은 교훈 하나 얻었다.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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