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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호근 칼럼

50대 정치인들, 제발 정신차리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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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정치는 우리의 운명을 죄는 고삐다. 미국이 세계대국이 된 것은 전간시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 덕분이었다. 위기의 시대는 위인을 배출한다. 처칠 총리가 없었다면 영국의 전후 복구와 재건은 생각보다 느렸을 것이고, 케네디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냉전시대 소련의 질주를 막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했다. 정치란 ‘악마적 수단으로 대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뽑아준 사람보다 더 철저한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는 일본 총리 무라야마(村山富市)의 고언이 딱 들어맞는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능력 있는 정치가를 가장 필요로 하는 단계다. 격화되는 분배투쟁을 흡수하려면 사회 설계를 바꾸고 성장엔진을 갈아끼워야 한다. 바로 그때, 오늘날의 고소득국들은 괜찮은 지도자를 배출했다. 프랑스의 미테랑, 미국의 레이건, 독일의 콜, 영국의 대처가 그들이다. 이들은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제·사회제도를 전면 개혁했다. 선진국보다 한 발짝 늦은 한국이 바로 그때다. 매서운 시대감각, 눙치고 어르는 타협력과 냉혹한 실천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혜성처럼 출현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친박(親朴) 정치인들이 검찰에 불려가고 야당 당사에서 고성이 오가는 심란한 장면 외에 희망 시그널이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성완종리스트는 지배블록을 와해시켰다. 누가 구속되고 안 되고 여부를 떠나 ‘악마적 수단으로 결국 악마의 덫에 갇혔다’는 혐의만으로도 권력 실세는 심각하게 훼손됐다. 매서운 정치인이라면 이 균열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어야 한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혁명을 입에 달고 다니던 386세대 정치인들은 다 어디 갔을까. 정치판의 주력부대인 베이비부머 정치인들은 다 어디 숨었나? 30년 쌓은 내공이 샛강 여울 정도였나. 공무원 연금개혁을 반 년이나 질질 끌 실력으로 위기의 강을 언제 건널까.

 정치인 충원기제가 변변치 않다는 것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결핍증이다. 국무총리를 널리 공모해야 할 현실도 그렇고, 괜찮은 정치인을 길러낼 배양기제는 없다. 그러니 영국처럼 캐머런 총리,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 같은 젊은 지도자를 기대할 형편이 못 된다. 유럽 소국 룩셈부르크 베텔 총리는 약관 42세, 게다가 동성애자다. 관용의 정신이 거기까지 갔다. 우리의 경우 정치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법조계는 강단과 정의감은 수준급이나 시대감각과 정책역량은 미달이다. 학계와 문화계 인사는 온실의 화초와 같아서 ‘폭풍의 언덕’을 견디지 못한다. 재계? 전방위 경쟁에 잔뼈가 굵어 리더십은 탁월하나 무균성이 아니다. 툭하면 얼룩소 논쟁에 휘말린다. 시민운동이나 지방의회? 글쎄, 소규모 전투와 살림살이는 잘 할지 모르나 대규모 국책사업과 거시정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검찰에 불려간 홍반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홍준표, 대통령 동생인 전경환을 구속한 배짱검사, 슬롯머신 사건을 파헤쳐 박철언과 이건개를 구속했던 모래시계 검사, 조직폭력배와 비리사범을 일소했던 그 솜씨를 익히 알고 있다. ‘세상의 표준’이란 뜻의 ‘準杓’로 개명할 정도로 각오를 다졌던 그가 불법 자금에 무너지고 있는 모습은 십 년 전 TV드라마 ‘홍반장의 가을’을 보는 듯 씁쓸하다. 노선·계파 갈등에 분열정치의 극단을 보이는 야당에 무슨 기대를 거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야당이 입에 달고 다니는 ‘혁신’은 잡음 없는 지분 나누기에 불과한데 집권당이 된들 저 분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한국은 바야흐로 사면초가 상태. 외부 압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차치하고라도 정권 차원의 개혁과제조차 지리멸렬이다. 김정은의 폭압정치는 극에 달했다. 어제가 5·18 민주화운동 35돌이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386세대가 태어났고, 이제 50대 정치세력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결국 여당의 눈치정치, 야당의 분열정치에 동원되는 단역배우가 되었나? 혁명에 청춘을 바친 그 열정과 집념은 어디로 증발했는가? 러시아 혁명시인(詩人) 마야콥스키는 퇴화하는 정신을 탓하며 권총 자살했다.

 자살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청춘의 기억을 끄집어내 정치판 현실을 보라는 얘기다. 왜 여의도에 있는가를. 50대 정치인들에게 진정 묻고 싶다. 보수진영에 남경필, 원희룡, 나경원, 유승민, 권성동, 심재철, 김태호, 진보진영에 박원순, 안철수를 비롯해 이종걸, 오영식, 최재천, 이인영, 안민석, 우원식, 조정식, 김부겸, 조경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보신과 타성에 젖은 60대 정치인들보다 훨씬 더 조로한 그대들 자신에게 불러야 할 노래다. 아니 그 노래를 부를 자격을 잃었을지 모른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제발 좀 정신 차려 달라.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