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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시대 따라 변해온 남자의 여자 유혹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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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형경
소설가

한 남자가 돈 많은 미망인들을 유혹하여 재산을 가로챈 사건이 있었다. 그는 열 명 이상의 여자에게 같은 행위를 반복한 다음 구속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돈을 뜯긴 여자들은 처벌을 원치 않았고 자발적으로 돈을 주었다고 진술했다. 남자는 출옥 후 휴양 도시를 방문해 또 다른 규수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남자에게 묻는다. “여자를 유혹하는 비결이 무엇인가.” 남자는 대답한다. “그 일은 아주 쉽다. 여자는 남자에게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를 견딜 수 없어 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내용인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래전 가부장제 시대 이야기다. 남자에게 선택받지 못했거나 제도에 소속되지 못한 여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기는 편견의 시대가 있었다. 당시에 남자는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장미꽃 한 송이만 제공하면 되었다. 생이 전적으로 남자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위로받기 위해 여자에게는 낭만적 사랑의 환상이 필요했다. 소설 속 남자는 달콤한 말을 건네면서 여자들이 자기 환상에 속아넘어가는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었다.

 여성들이 교육받기 시작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환상은 해체되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사실을 간파한 여성들은 가부장제에서 살기 위한 욕구를 솔직하게 인식했다. 여자의 욕구를 읽은 남자는 그에 맞게 유혹 전략을 바꾸었다. “평생 당신을 책임지겠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는 여자에게 가장 잘 먹혀드는 유혹의 언어였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무거워 자주 화를 낼 수도 있다는 옵션은 공지하지 않았다.

 가정의 지배체제는 국가의 통치체제를 모방한다고 한다. 절대 군주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었던 시대의 가부장제는 민주주의가 정착하면서 해체되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삶의 주도권을 자기 손에 쥐려 노력하자 남자들은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을 변화시켜야 했다. 근육을 키워 성적 매력을 발산하면서 여자를 유혹하기도 하고, 여자가 원하는 권력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주체적이라는 자기 이미지를 가진 여성에게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가정 내 책임과 권력을 동등하게 나누기 원하는 여자에게는 요리 잘하는 모습으로 어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젊은 남자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그녀가 왜 떠났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남자 탓이 아닐지도 모른다. 실은 여자도 진정한 자기 욕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