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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긴장과 백두산 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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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 랴오닝성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맞보고 있다. 거리는 불과 500여m. 엊그제 10여 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았다. 초라했던 회색 상가는 현란한 고층 빌딩이, 강가 남새밭은 고급 아파트가 즐비했다. 자전거 넘치던 거리는 승용차와 관광객으로 붐볐고 정치 선전 구호로 가득했던 거리 광고판엔 ‘국제패션 박람회’ 소개로 요란했다. 폭주에 가까운 중국 경제 성장을 고려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반면 건너편 신의주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쓰러질 듯 버티고 선 벽돌 집에 거무스레한 굴뚝까지 10년 전 사진이다. 딱 하나가 새로웠는데 재작년 완공했다는 노동공원. 어린이를 위해 만들었다는데 미끄럼틀과 초라한 수상 시설 몇 개가 전부다. 그나마 사람 그림자를 찾기 어려웠으니 전시용이 분명했다. 중국인들이 말했다. “신의주를 보는 건 80년대 홍콩에서 선전을 보는 것과 같다”고. 10여 년 전에 들었던 말이다.

 #지린성 퉁화시 북한 식당에서 저녁을 했다. 여종업원들의 공연이 시작됐다. 첫 곡은 여지없이 ‘반갑습니다’다. 이어 몇 곡 선보인 이들이 지난해 나왔다는 신곡을 불러주겠다고 했다. 곡명은 ‘김정은 장군님 없인 못 살아’. 가사는 안 봐도 비디오다. 중국에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들이 한국 노래도 부르며 자유 분방(?)했던 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좀 어색했다. 김정은 체제가 아직도 불안하다는 신호일 것이다.

 #중국의 창바이산(백두산) 자락에 위치한 완다 창바이산 국제리조트. 중국 최고 부동산 개발 및 문화 관광 기업인 완다 그룹이 20㎢의 원시림에 수조원을 투자해 만들었다. 이곳에 입주한 웨스턴과 쉐라톤 등 9개 국제 유명 호텔의 객실만 3500개. 또 60여 개의 쇼핑센터와 아시아 최대 스키장, 54개 홀의 골프장, 660석의 대형 극장까지 들어서 미니 레저 도시라 할 만하다. 리조트 영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완다는 요즘 한국에 지사까지 내 사활을 건 관광객 유치를 하고 있다. 민족의 성지인 백두산에 오르고자 하는 한국인의 민족 정서를 꿰뚫은 장삿속이다. 지난해에만 20만 명이 넘는 한국인이 창바이산에 올라 ‘백두’를 외쳤고 이들이 왕서방에게 낸 산(山) 입장료만 100억원에 가깝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 했다. 누구든 신의주를 바라보고 북한 종업원의 신곡을 들으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접는 아픔이 있다. 동시에 이제는 우리가 먼저 다가가 북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밀려온다. 마침 북한이 지난달 백두산을 국제관광특구로 지정했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먼저 백두산 남북 회담을 제의해 보면 어떨까. 중국의 완다가 북한에 백두산 리조트를 만들기 전에 말이다. 누가 아는가, 남북의 ‘백두산 사유’가 북한의 잠수함 탄도미사일(SLBM) 발사로 야기된 한반도 긴장 완화를 풀 첫 단추가 될지. (창바이산에서)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