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가족 앞에서 … 북, 현영철 고사총 처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졸다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원안)이 지난달 인민군 훈련일꾼대회에서 조는 모습.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 주재 회의에서 조는 불충 등을 현 부장의 숙청 이유로 꼽았다. 가운데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사진 노동신문]

집권 4년차인 김정은(31) 체제의 평양에서 피의 숙청이 재연됐다.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반국가 혐의’로 처형한 지 1년4개월 만이다.

 국가정보원은 13일 “북한 군부 서열 2위인 현영철(66) 인민무력부장이 4월 30일쯤 비밀리에 숙청됐다”고 밝혔다. 한기범 국정원 1차장은 오전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현영철을 체포한 지 3일 만에 평양 순안구역 소재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총살했다는 첩보가 있다”고 보고했다. 고사총은 북한이 전투기 등 항공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보유한 구경 14.5㎜의 대공화기다. 6·25 때 소련에서 들여왔으며 최대 사거리 4㎞인 기관포의 일종이다. 군 당국자는 “고사총은 고사포로 불릴 만큼 위력적인 무기로 지난해 우리 민간단체가 대북전단용 풍선을 날렸을 때 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했다”며 “고사총으로 사람을 쏘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현영철은 지난달 28일 모란봉악단 공연을 관람한 뒤 공개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한 1차장은 숙청 사유에 대해 “김정은에 대한 불만 표출과 수차례의 지시 불이행, 회의에서 조는 모습 등 불충(不忠)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참석 의원들이 전했다.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경우 군 원로인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회의 때 하품을 해도 그냥 넘겼다”며 “노(老)간부들에게 ‘어린 지도자’로 무시당하기 싫어하는 김정은의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마원춘(59) 국방위 설계국장과 변인선(69)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58) 당 재정경리부장 등 핵심 실세들이 올 들어 잇따라 숙청당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들은 현영철과 더불어 김정은이 후계자로 낙점받는 시기에 발탁된 인물들이다. 이번엔 ‘자기 사람들’을 쳐냈다는 점에서 장성택이나 이영호(2012년 7월 숙청) 총참모장 등 아버지(김정일)가 후견인으로 붙여준 실세들을 제거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해 김정은 체제를 안정적이라고 진단해온 정부도 분석을 다시 하는 기류다. 청와대 핵심 당국자는 “김정은 체제에 불안 요소가 있다”며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어떻게 통치하겠느냐”고 말했다. 측근 실세들이 잇따라 숙청됐지만 최용해 당 비서와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이들이 노동당과 군부를 나눠 관할하는 체제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문제는 추가 숙청이 계속될 경우다. 단기적으론 충성 분위기가 감돌겠지만 엘리트들의 반감이나 동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장성택 처형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진단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yjlee@joongang.co.kr

◆고사총= 전투기와 헬기 등 비행체를 겨냥해 북한이 개발한 대공화기다. 옛 소련에서 들여온 구경 14.5㎜의 중기관총 4개를 한데 묶어 명중률과 파괴력을 높였다. 분당 1200발을 쏠 수 있고, 최대사거리 5㎞에 1.4㎞ 상공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