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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얼마나 학원 가기 싫었길래 … ‘잔혹동시’ 만든 학업 스트레스 1위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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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0세 소녀가 쓴 ‘학원가기 싫은 날’이란 제목의 시를 놓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시를 읽어봤습니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 먹어…’. 부모를 놓고 이렇게 잔혹한 표현을 쓸 수 있느냐는 비난이나 시적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줘야 한다는 시각이 분분하지만 맨 먼저 든 생각은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학원이라는 곳이 가기 싫었으면, 반대로 학원이 아닌 곳에서 얼마나 다른 활동을 하고 싶었으면 이런 표현까지 썼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솔로 강아지』라는 시집을 낸 그 소녀만이 아니라 오늘도 학원버스를 탄 제 아이부터 입시학원을 돌고 있을 수많은 학생들의 심정이 그럴 것만 같았습니다.

 교육정책에 관여하는 고위 인사도 같은 얘길 했습니다. 그는 “시집의 다른 시를 읽어보니 아이의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자신만의 생각을 쓴 게 아니라 학교에서 만난 친구나 놀이터에서 어울린 다른 아이들의 마음까지 녹여 담은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시를 ‘저항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행복을 유예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어른들에게, 학원에 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어른들에게 심어준 세상에 아이들이 격하게 던지는 저항의 목소리라는 겁니다.

 이른바 ‘잔혹동시’는 경제성장의 바탕이 됐고 학업 능력 에선 아직도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 교육의 그림자를 돌아보게 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국내 11, 13, 15세 아동의 학업 스트레스 지수는 50.5%로 미국·영국 등 조사 대상 29개국 중 가장 높습니다. 반면 주관적인 건강상태 지수는 높게 나왔는데 “고통에 대한 인내심이 높거나 학력 위주의 경쟁적 학교 환경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곁들여졌습니다.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면서 아동·청소년기를 보내기 때문에 학생 자살률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을 겸하고 있는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세종청사 집무실에 학생 자살 현황판을 만들었습니다. ‘행복 교육’을 추진 중인 황 부총리는 목숨을 끊는 학생이 없는 게 그 바로미터라며 매일 업데이트를 한답니다. 2012년 139명이었던 가슴 아픈 숫자는 2013년 123명, 2014년 118명으로 감소세입니다. 올해도 4월 말 현재 전년 대비 32%가량 줄었다니 다행입니다.

 동시 논란이 학부모들에게도 자녀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웬만한 부모 세대만 해도 지금 아이들처럼 사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을 겁니다. 돌이켜보면 동네 아이들과 놀러 다니고 학교 숙제만 꼬박꼬박 해도 되는 유년 시절이 떠오를 겁니다. 당시 입시에서도 경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학원에 안 다녔어도 우열을 가를 수 있었습니다. 한 사교육기관 대표는 학원에 다니는 이유로 “옆집 아이도 다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옆집 부모와 합심해 마음이 잔혹해져 가고 있을지 모르는 아이들을 좀 풀어 줄 순 없을까요.

김성탁 교육팀장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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