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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영원한 뽀빠이’ 이상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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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뽀빠이 이상용은 여전히 활기 넘쳤다. 그는 “매니저 없이 버스·기차 타고 전국 을 누빈다”고 했다. “건강을 위해 따로 챙겨 먹는 게 있느냐”는 질문에 “아내가 해주는 밥이 최고의 보약”이라며 웃었다. [오종택 기자]

연예인들의 좌충우돌 군대 적응기를 다룬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를 시청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바로 ‘우정의 무대’다.

 “뒤에 계신 분이 어머니 맞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자, 이제 어머니를 힘차게 불러봅니다. 하나, 둘, 셋!” “어머니!”

 장병과 어머니의 만남으로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아내던 이 프로그램은 약 8년간 방송되며 인기를 끌었다. 그 중심에는 MC 이상용이 있었다.

 ‘영원한 뽀빠이’일 것 같던 그가 어느새 고희(古稀)를 넘겼다. 정확히 올해 일흔 하나다. 하지만 지난달 말 만난 그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카메라 앞에서 군살 없는 몸매와 팔뚝의 근육을 뽐냈다. 앓고 있는 질환이나 복용하고 있는 약도 없단다.

 “매일 40㎏ 역기를 600번씩 들고, 1시간 동안 달리기를 합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술·담배·커피를 입에 댄 적이 없고요.”

 그는 강연과 행사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는 달력을 보여줬다. 여느 때보다 바쁘게 지내는 요즘, 유일한 낙은 손자들의 재롱을 보는 것이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손자 사진을 보여주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손자 바보’다.

1985년 당시 41세의 뽀빠이 이상용. [중앙포토]

 -요즘 군대 프로그램 보면 ‘우정의 무대’를 진행하던 시절이 그리울 것 같다.

 “무척 그립다. ‘우정의 무대’는 연예인이 아닌, 진짜 군인들이 꾸미는 무대였다. 녹화 날짜가 잡히면 해당 부대에서는 6개월 전부터 연습에 돌입한다. 대대장부터 이병까지, 모두 함께 동고동락하며 무술·춤·노래를 연습한다. 때문에 우애가 돈독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 ‘우정의 무대’가 계속 됐다면 자살·탈영이나 총기 난사 사건 등이 절반으로 줄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1996년, 불미스런 사건으로 ‘우정의 무대’를 그만뒀는데.

 “정치권으로부터 국회의원 출마 제의를 받았다. ‘4년짜리 국회의원보다 영원한 뽀빠이를 하겠다’고 거절했다. 바로 그날, 강원도 화천에서 ‘우정의 무대’ 녹화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대조명이 꺼졌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모든 언론에 내가 심장병 어린이 돕기 공금을 횡령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사를 받고, 무혐의가 밝혀졌지만 돈과 명예, 모두 잃었다. 그 길로 미국으로 떠났다.”

 단돈 20만원을 들고 홀로 미국으로 간 그는 관광버스 가이드를 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하루 14시간씩 버스에서 서서 일하며 근근이 살았다. 2년 후 가족이 그리워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비닐하우스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5~6년 정도 지나자 자연스럽게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고, 강연자로 제 2의 삶을 살게 됐다. 그간의 고생은 강연자로서의 삶에 자양분이 됐다.

 -강연자로 인기가 높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하나.

 “내 강연의 주제는 ‘인생은 아름다워’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전부 맛본 만큼 누구라도 위로하고 격려할 준비가 돼있다. 교훈적인 내용만 하는 건 아니다. 야한 얘기가 절반이다.(웃음)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권씩 책을 읽는다. 강연을 잘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

 “얼마 전 ‘할머니·할아버지는 트로트만 들어야 되냐’는 생각에 어르신들을 위한 ‘클래식 토크 콘서트’를 기획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노인들을 위해 산간마을 등 오지를 찾아 다니며 위문공연을 하고 싶다.”

글=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영상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3iN7ay1vvz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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