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의 고향<116>의흥 예씨

중앙일보

입력 1984.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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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의흥예씨의 시조는 고려 인종(1123∼1146) 때 문하찬성사를 지낸 예낙전-. 문장과 덕망이 빼어나 김부식·이인로·이규보등 당대의 명유들과 어깨를겨루었던 석학이었다. 경북군위군일대를 식읍으로하는 부계(의흥의 옛지명)군에 봉해진 것을 인연으로 후손들이 부계를 본관으로 삼았다. 「의흥」단일본이며 전국2천3백여가구에 인구는 l만1천여명.

<시조는 예낙전>
예씨의 선대는 중국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문자왕13년(504)에 사신으로 북위에 갔던 예실불에 관한 기록이 있고 경남울주군천전리 신라화랑석각에는 예씨성의 금석명이 발견되기도 했다. 또 중국의 주·한·당·송등 역대의 사서에도 예씨에 관한 기록이 자주 나타날뿐아니라 산서성에는 「예성」까지 있어 그 뿌리가 깊은것을 알수있다. 그러나 정확한·문헌이 없어 예낙전이상의 선대계보는 밝혀내지못하고 있다. 예씨는 3세에 이르러 검교중랑장(예중태)파와 봉익대부전상판서 (예장준)파로 크게 나뉘어졌다.
7세손 예승석은 조선초기 (1406∼1476)예문의대표척인물-. 세종29년 문과에 급제, 평안·강원·전라도관찰사, 한성석윤, 대사간등을 지낸 명신이요 청백리였다. 김종직, 서거정등 당대의 거유와 교분이 두터웠던 문장으로 왕의 명을 받아 정인지, 신숙주등과 함께 「고려사」세종및 숙종실록등의 편찬에도 참여했다.
그의 아들 예충련 또한 성종6년 문과에 올라 홍주진병마절제사 경주부윤 성균관대사성등을지냈다. 예충련은 경주부윤으로 있을당시 폐허가된 신라 영묘사 옛자리에 버려진 성덕대왕신종 (일명=에밀레종 국보29호)을 경주성 남문루에 안치시켜 신라예술품중 최대의 걸작에 속하는 국보를 오늘날까지 보존이 가능케한 문화재보호의 숨은 공로자다.
예씨는 시조 예낙전이 부계에 뿌리내린이후 7세손 예승석대에와서 충남당진의 면천으로 옮겨 그맥을 이어왔다. 그후 10세손 예극양이 경북 청도군 이서면 대전(한밭) 동으로 못자리를 옮긴다.
예극양은 임진왜란당시 어모장군 (정3품) 이었다. 선조가 의주로 피신할때 수행한 임란공신이었으나 7년전쟁이 끝나자 일체의 벼슬을 버리고 삼국시대의 이서국 옛터인 「한밭」 에 정착해「한운야학」을 벗삼아 살았다. 이같은 이유로 「의흥예문」은 본관을「한밭」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밭」을 중심으로 한 청도군은 예씨의 아성이다. 임란공신 예극양이 한밭에 뿌리내린이후 그후손들은 문한과 청식, 덕업의 전통을 가꾸었다.
전설적인 효자 예조학의 「경암유고」, 예대기의 「균곡유고」, 예대주의 「의재집」, 국치를 당하자 중국에 망명, 절의를 지킨 영남의 석학 예대희의 「이산집」등이 조선후기 「의흥예문」이 남긴 학문적 자취다.
대체로 영남의 사림들이 그러했듯이 조선조의 예씨들은 생원및진사시에 등과하는데 만족했을뿐 벼슬은 사양했으며 그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조선말엽의 예대열이다. 그는 진사시에 14번 도전한끝에 진사에 올랐으나 관직만큼은 끝내 거걸, 가문의 전통을 지켰다한다.
예부터 영남의 사림들은 예씨를 비롯, 경북지방에 분포되어 사는 희성 도씨·장씨등 3문중을「구도(대구의도씨) 청예 (청도의예씨) 밀장 (밀양의 장씨)」이라부르며 존경해왔다. 이들 3문중은 희성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이지방 대성못지않게 문한의 가통을 지키며 영남사림의 전형으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이 고집스럽게 가문의 전통을 고수한 탓일까, 의흥예씨 문중에서는 개화기 이후에도 두각을 나타낸 인재가 드물다. 이른바 『「반촌」의 통폐로인해 새로운 시류에 적응하지못하고 뒤떨어질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의흥예씨 화수회측의 해석이다.
조선일보초대발행인 예종석, 유한양행창업에 간여했던 실업인 예동식,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때에…」로 시작되는 추억속의 군가「용진가」를 작사·작곡했던 예관수 (전3군합동헌병대장), 3선의원 예춘호등이 기억속에 남아있는 해방후의 인재들.
이밖에 예종덕(단국대교수), 예용해 (한국일보논설위원) , 예영수 (문박·외국어대사대학장) , 예상해(변호사)등이 돋보인다. <글 김창욱기자>

<지명인사>
화수회제공·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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