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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스마트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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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일러스트=프리랜서 강일구]

디지털 시대, 위기의 아이들
캐서린 스타이너 어데어·
테레사 H 바커 지음
이한이 옮김, 오늘의책
440쪽, 1만5000원

“2세에서 5세 사이의 아이들이 신발끈을 묶는 것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노는 것을 더 잘한다.”

 2010년 미국에서 어머니 2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조사 이후 디지털기기의 보급이 훨씬 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 심해졌을 것이다.

 이 책은 디지털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위험을 다루고 있다. 사실 디지털기기의 중독성과 해악을 경고한 책이나 연구논문은 많이 나왔다. 최근 영국 더비대 연구팀은 스마트폰이 담배나 술보다 더 중독성 문제가 심각하다며 ‘스마트폰이 불러온 질병 6가지’를 발표했다. 거북목증후군 등 신체적 질병 외에 디지털 치매나 디지털 격리증후군 같은 정신적·사회학적 병리현상도 꼽았다.

 디지털 치매는 많은 정신의학자·뇌과학자들이 실제로 검증한 디지털 중독의 부작용이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디지털 치매』라는 책에서 컴퓨터·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가 뇌 기능을 퇴화시킨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격리증후군은 직접 만나는 것보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끼는 현상이다. 증상이 심해지면 남과 소통하는 능력이 떨어져 대인관계와 사회생활이 어려워진다.

 하버드 의학대학원 정신의학자인 캐서린 스타이너 어데어 역시 디지털 치매와 디지털 격리현상에 주목한다. 하지만 디지털 중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아이들을 양육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간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나 나중에 디지털에 익숙해진 어른들의 중독도 문제지만 처음부터 디지털 세상에 태어난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은 완전히 다른 발달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디지털 세계에 무방비로 노출될 경우 정상적인 인성·지능 발달에 장애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디지털 원주민 세대에선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집단사이버폭력, 음란물 시청 같은 문제 행동이 문제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로 세상을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해왔던 이들에겐 모두가 겪는 문제라는 것이다.

 “성인은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습관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아이들을 위협하게 놔둬선 안 된다. 아이들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 능력 이상으로 테크놀로지에 연결되고 있다.”

 저자는 디지털의 유용성을 인정하지만 아무 의심 없이 기술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아이들에겐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양육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타이너 어데어 박사는 정신과 의사이면서 미국 내 초중고 260곳의 교육과정 개편에 참여한 교육전문가다. 공동 저자 테레사 H 바커 역시 아동심리학 분야에서 활약해온 저널리스트다. 책 곳곳에는 가정문제와 아동문제에 관한 풍부한 상담 경험이 녹아있다.

 이들은 디지털 시대에 지속 가능한 가족을 만드는 7가지 부모의 자질을 제시하고 있다. 핵심을 요약하자면 오프라인 대화·모임을 통한 가족간의 의사 소통이다. 아이가 디지털 중독에 빠지지 않고 디지털 세계에 격리되지 않게 하려면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때 부모들이 삼가야 할 태도는 자신들은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하루 종일 스마트폰·컴퓨터·태블릿PC에 빠져 살면서 자녀들에게 “게임을 하지 마라” “컴퓨터를 꺼라”고 명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표리부동한 행태는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신뢰감만 떨어뜨린다.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고 스마트폰에 빠진 엄마·아빠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부모에 대한 불만을 그림을 통해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이 디지털의 위해성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부모들 스스로 디지털기기 사용을 통제하고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휴대전화가 가족과 친구와의 대화를 대체할 수 없으며, 중요한 대화는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자기 통제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식은 ‘바로 잡는 식’에서 ‘연결하는 식’으로 대화를 전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너 페이스북 하고 있니? 숙제는 끝내고 하는 거니?”라고 말하는 대신 “주말이 오기 전에 과제를 다 해야 좋은 주말을 보낼 수 있지”라고 하는 식이다. 자녀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통제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어린이날을 맞아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를 선물했을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이를 유용하게 쓰길 바라면서도 게임이나 포르노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저자들이 제시한 아이들의 휴대전화 사용 가이드는 이런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듯하다.

 “휴대전화는 선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휴대전화를 갖는 권리를 철회할 수 있다고 가르쳐라. 남을 괴롭히거나 성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포르노를 보는데 사용하면 언제든지 빼앗길 수 있다는 점을 아이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글=정철근 논설위원 jcomm@joongang.co.kr
일러스트=프리랜서 강일구 ilgook@hanmail.net

[S BOX] 밥 먹을 땐 꺼두세요

이 책의 저자들은 디지털 시대의 원만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용규칙과 제한선을 분명히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쓰게 할 경우라도 반복적으로 명확한 지침을 내려주라는 주문이다.

 ①발달단계상 아이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콘텐트에는 보호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접근 제한을 걸어두라.

 ②아이들이 휴대전화를 갖고 놀다 고액의 쇼핑을 하는 등 실수를 했을 때는 창피를 주지 말고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언하라.

 ③아이들에게 휴대전화를 사줄 땐 규칙을 알려주라. 불법적인 것은 어떤 것도 안 되며 잃어버리거나 깨뜨리면 수리할 책임은 너에게 있다고 말하라.

 ④아이와 함께 비밀번호를 걸어두고 “내가 너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될 때까지 네 휴대전화를 살펴볼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라.

 ⑤휴대전화는 현실에서 가족과 친구의 대화를 대체할 수 없음을 알려주라. “이것은 소형컴퓨터이며, 중요한 대화들은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⑥길을 건널 때는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마라, 휴대전화를 갖고 잠이 들지 마라, 숙제를 하거나 가족과 식사를 할 때는 휴대전화를 꺼 두어라 등 세세한 규칙을 세우라.

 ⑦테크놀로지를 이용하되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휘말리지 말아라, 네 휴대전화가 네 인생이 되게 하지 말아라 등 아이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이야기를 자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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