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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루저들이 사는 나라의 권력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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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연수
소설가

오월이 찾아왔다. 나뭇잎들은 신생의 연두빛으로 흔들린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은 슈크림처럼 부드럽고, 햇살은 투명한 빗방울처럼 아스팔트에 튀어 오른다. 빅뱅은 완전체가 되어서 돌아와 노래한다.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저스트 어 루저.” 그러나 푸르른 날은 아직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 가사처럼 신문에는 삼포, 오포를 넘어서 연애, 결혼, 출산에 인간관계, 주택 구입, 꿈과 희망마저도 포기했다는 칠포 세대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 다른 면에는 무슨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된 정치인들이 저마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다는 기사도 있다. “루저.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 더러운 쓰레기. 거울 속에 난 아임 어 루저”라는 건 우리만 아는 모양이다.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악마의 시’라는 소설을 썼다가 1989년 이란의 호메이니에게 사형선고라는 파트와를 받은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의 자서전을 읽었다. 언뜻 보기에 암울하기 짝이 없는 자서전이다. 암살단의 추적을 피해 조지프 앤턴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며 은신하던 무렵, 그는 나중에 그 시절을 회상하는 책을 쓴다면 어떻게 써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 프로젝트에 단테를 인용한 ‘지옥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왜 지옥인가? 루슈디에 따르면 한때는 그의 머릿속에도 그럭저럭 납득할 만한 세계상이 있었으나 파트와가 거대한 망치처럼 세계상을 산산이 부숴버린 뒤 별안간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부조리하여 선악마저 분간할 수 없는 세계로 떨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지옥편으로서의 인생이라니, 울적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리라 예상하겠지만 822쪽에 달하는 책은 시종일관 경쾌하다. 이는 자서전임에도 ‘나’라는 1인칭이 아니라 ‘루슈디’라는 3인칭으로 서술하기 때문이다. 파트와는 물론이거니와 타블로이드 신문의 조롱에도 그는 3인칭으로 맞선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네 번 결혼한 그의 마지막 아내는 23살 연하의 모델 파드마 락쉬미였다. 그러자 한 신문은 추남이 더 세심하기 때문에 예쁜 여자와 잘 지낸다는 생활 기사를 실으면서 “이건 분명 살만 루슈디의 은신처에서 환영받을 만한 정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일모레 일흔이 다 되어가는 노인의 자서전에는 조롱당하는 주인공 루슈디의 삶이 과감 없이 실려 있다.

 이 3인칭의 시점이 인생의 통찰로까지 전개되는 건 첫 부인 클래리사가 암으로 죽어 아들이 비탄에 빠져 있는 동안 파드마와 애정 행각을 벌이던 쉰두 살의 자신에게 예순다섯 살의 루슈디가 이런 편지를 쓸 때다. “쉰두 살의 나에게. 정말인가? 큰아들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미래에 대한 실존적 두려움에 빠져 절망하고 있고, 작은아들은 이제 겨우 두 살인데, 아버지란 작자가 뉴욕에서 아파트나 구하러 다니고,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핼러윈에 포카혼타스처럼 차려입은 자네의 몽상, 자네의 몰락을 쫓아다니고 있단 말인가? 그런 인간이었던 건가? 맙소사, 자네가 철이 들어 내가 되었다니 기쁘기 그지없네.” 이 편지에는 예순다섯의 루슈디에게 쉰둘의 루슈디가 보내는 추신이 붙어 있다. “철이 들긴 들었소?” 루슈디의 위트가 빛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죽기 전까지는 철들기 어려울 것이다. 유명 소설가든 필부든 다들 아집에 사로잡혀서 사니까. 그러나 이들의 아집은 주위의 외면을 부를 뿐이지만, 권력자의 아집은 대참사를 낳는다. 그런 점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는 모든 권력자의 집무실에 붙여놓을 만하다. 아집의 인간에게 실수는 불가피하다. 대신에 3인칭의 거울로 자기가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바로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의 권력자에게는 1인칭의 거울뿐이라 벌거벗은 채 우리를 꾸짖고 있다. 서구 정치인들처럼 스스로 조롱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실수한 우리 권력자에게 사과 정도는 받고 싶다. 얼른 옷을 입고 멋쩍게 웃는다면 우리도 못 본 척하겠지만, 여전히 벌거벗은 채 정색하니 우리가 웃을 수밖에.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못된 양아치. 거울 속에 넌 저스트 어 루저”라는 가사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다시 오월이다.

김연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