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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될 지옥섬 하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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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이훈범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훈범
논설위원

산업혁명은 ‘아타우알파의 황금’에서 비롯됐다. 아타우알파는 잉카제국의 (사실상) 마지막 황제다. 스페인 건달 피사로에게 사로잡힌 뒤 풀어주면 자기가 갇혔던 방을 채울 만큼 금을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약속을 지켰지만 피사로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다. 아타우알파는 죽음을 면치 못했고, 그의 황금은 유럽으로 건너가 산업혁명의 밑천이 됐다. 그렇게 성장한 서구 자본주의는 결국 제국주의의 식민지 수탈 위에 쌓인 성(城)과 다름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도 말했다. “제조산업 성립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은 신대륙 발견과 거기서의 귀금속 유입으로 촉진된 자본의 축적이었다.”

 서구의 수법을 아시아에서 발 빠르게 모방한 게 일본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청일전쟁·러일전쟁 같은 잇따른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켜 자본을 축적했다. 자신감을 얻은 후발 제국주의 일본이 자기의 아시아 패권을 인정하지 않는 서구열강과 맞붙은 게 태평양전쟁이다.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못했던 일본의 식민지 착취는 더욱 극랄해졌고, 강제위안부와 강제징용 같은 절망적이지만 독창적인 신종수법까지 보태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여기서부터다. 서구로부터 제국주의 수탈로 자본주의 살찌우기를 모방해 성장한 일본이 베낀 건 자랑하고 싶어 안달하면서도 자신들의 창조적 발명품은 극구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길 바라는 근대산업시설이 딱 그렇다.

 외형적 의미로만 보면 그야말로 훌륭한 세계문화유산들이다. 23개 시설 중 문제가 되고 있는 7개 역시 그렇다. 일본 중공업 역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야하타 제철소는 아시아 최초의 종합 제철소다. 미쓰비시 대형 크레인은 당시 영국 말고는 어디에도 없던 첨단시설로 세계적으로 희귀한 조선 유산이다. 하시마 탄광은 작은 섬 전체가 탄광이었던 곳으로 할리우드 영화 ‘인셉션’ ‘007 스카이폴’의 촬영지로 쓰였을 정도로 독특한 경관을 자랑한다.

 이런 빛나는 유산을 자랑하는데 당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군색하다. 켕기는 게 있어서다. 자랑스러움 속에 부끄러운 부분도 있는데 그걸 다 드러낼 용기가 없는 까닭이다. 애초에 일본은 이들 산업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하면서 대상기간을 1850~1910년으로 한정했다. 이후로도 가동을 계속했으며, 태평양 전쟁 중에는 극에 달했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곳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산업유산 7곳에서 조선인 5만8000명이 끌려와 강제노동을 한 역사를 숨기고 싶었던 거다.

 일제 말기에 하시마 섬에 상주한 광부와 직원 수는 5300여 명으로 일본열도 최고의 인구밀도였다. 그들을 수용하기 위해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가 세워진다. 폭 160m, 길이 480m의 좁은 섬을 65동의 아파트가 뒤덮었다. 그 모습이 군함을 닮았다 해서 붙은 별명이 ‘군함도’다. 이처럼 섬의 독특한 경관이 생겨난 게 1916년 이후인데 1910년까지로 한정해 세계유산이 되겠다는 논리가 어설프다 못해 안쓰럽다.

 우리는 그 시설들이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제대국 일본을 만든 초석인 그곳에 팔자에 없는 광부가 돼 서지도 못하는 좁은 갱도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석탄을 캔 징용노동자들의 녹은 폣물과 닳은 뼛가루가 베어 있음을 함께 기억시키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외교역량도 거기에 집중해야 함은 물론이다. 징용노동자들은 아파트에 살지도 못했다. 일본인 광부들과의 갈등과 폭동을 막기 위해 외딴 곳에 세워진 훨씬 열악한 숙소에 수용됐다.

 작가 한수산은 하시마 탄광의 실태를 고발한 장편 다큐소설 『까마귀』에서 이렇게 썼다. “진폐증으로 쿨럭쿨럭 기침을 해대는 조선 징용공들이 누에처럼 꿈틀거리며 잠들어 있는 지옥섬 하시마의 밤은 사나운 파도 속에 묻혀가고 있었다.” 파도에 묻힌다고 역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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