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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회복엔 최소 1~2년 걸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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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인혁당 사건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져 관련자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인혁당 사건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눈치를 봐 판결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검찰 측이 항고하지 않더라도 재판을 1심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관련자들이 사법적으로 완전히 명예를 회복하려면 최소한 1~2년은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으로 사법부가 과거사 반성에 적극 나설지도 관심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9월 취임 때 "과거의 잘못을 되짚어 보고 국민에게 솔직히 고백하겠다"고 밝혔었다.

◆ "명백한 증거조작 발견돼"=형사소송법상 재심 개시 결정을 받으려면 판결의 서류 또는 증거물이 위.변조된 사실이 확정판결에 의해 증명되거나, 무죄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증거가 발견돼야 한다(제420조). 이 때문에 재심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비판도 많다.

이번에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것은 원래의 판결에서 고문 등 명백한 증거조작이 있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재심 개시 결정을 한 근거는 형사소송법 제422조다. 이 조항은 확정판결이 없더라도 증거조작이 입증될 경우 재심 개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을 고문한 공무원들은 독직폭행죄의 공소시효(5년)가 지나 '공소제기→판결'을 통해 증거조작 여부를 가려낼 수 없다"며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발표 자료(2002년) 등을 볼 때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 "피고인들이 법정에 없다"=이날 재심 개시 결정이 내려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에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8명의 피고인을 대신해 온 유족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대거 참석했다.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30년 전 발생한 사건이고 관련 자료가 방대해 재판이 길어지게 됐다"며 "가장 가슴 아픈 건 피고인들이 이미 사형당해 지금 법정에 서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인혁당 사건 주요 일지

▶ 1963년 6월 한.일회담 반대 시위 확산되자 비상계엄령 선포

▶ 64년 8월 중앙정보부, 제1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41명 구속, 16명 수배

▶ 72년 10월 박정희 정부, 유신 선포

▶ 74년 4월 박 대통령, "민청학련, 인민혁명 수행" 특별담화 발표

▶ 74년 4월 중앙정보부, 민청학련 배후로 제2차 인혁당(인혁당 재건위) 지목

▶ 74년 4월 중앙정보부,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24명 구속

▶ 74년 7~9월 긴급조치로 설치된 비상보통(고등)군법회의에서 재판

▶ 75년 4월 대법원, 관련자 확정 판결/ 8명 사형, 8명 무기징역, 6명 징역 20년, 확정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

▶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인혁당 사건은 고문에 의한 조작"발표

▶ 2002년 12월 인혁당 사건 유족, 서울중앙지법에 재심 청구

▶ 2005년 12월 서울중앙지법, 인혁당 사건 재심 개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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