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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자] 새 기술 개발했다, 사회와 소통했다, 새 비전 제시했다 … 한국의 미래 선도할 304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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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고(故) 유민(維民)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여섯 번째 영예를 안은 올해 수상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혁신적인 창의성을 바탕으로 기존 가치를 넘어 새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심사는 이홍구 전 총리, 송자 전 교육부 장관,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오세정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이건용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이 맡았다.

이홍구 심사위원장은 “기성세대의 과거 업적을 포상하는 기존 상들과 차별화해 40대 연령 안팎 젊은 세대의 미래 가능성을 격려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과학기술부문 - 김대형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스마트 의료 패치’ 개발 … 파킨슨병 환자들 투약 걱정 덜 듯

파킨슨병은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퇴행성 뇌질환 중 하나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 움직임을 조절하는 뇌 신경전달물질(도파민) 분비에 이상이 생긴다. 그 탓에 손발을 심하게 떨고 행동이 느려진다. 치료제는 없지만 도파민 분비를 돕는 약을 쓰면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다. 단 제때 정확한 양을 투약하는 게 중요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 소속 김대형(38)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는 몸에 붙이는 ‘스마트 의료 패치(patch)’를 개발해 이 문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다. 파스를 닮은 이 패치 속에는 동작 감지 센서, 도파민 분비 약물을 담은 나노(㎚, 1㎚=100만분의 1㎜) 입자, 전자히터, 메모리 등이 들어 있다. 환자가 손을 떨면 센서가 알아채고, 히터로 나노 입자를 녹여 피부로 약을 주입한다. 메모리는 센서가 측정한 데이터를 저장하는 용도다. 이 패치가 상용화되면 파킨슨병 환자들은 투약 걱정을 잊고 살 수 있게 된다.

 김 교수는 같은 기술을 응용해 로봇 의수(義手)용 스마트 인공피부도 만들었다. 최근 장애인을 위한 ‘로봇 의수’가 많이 개발되고 있지만 대부분 물건을 잡는 등 기계적인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실제 손이 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많다. 손에 쥔 물건의 세기를 파악하고 온도·습도를 느낀다. 아기나 애완동물 등을 쓰다듬을 땐 체온을 통해 애틋한 감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김 교수의 인공피부에는 압력·온도·습도 센서와 전기히터가 내장돼 있어 실제 손과 똑같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로봇 의수(인공 팔)에 이 피부를 씌우고 신경과 연결하면 다른 사람과 악수할 때 부드럽게 손을 쥘 수 있다. 품에 안은 아기에게 따스한 ‘엄마의 사랑’을 전할 수도 있다.

 스마트 의료 패치는 지난해 3월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로봇 의수용 인공피부는 12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소개됐다. 둘 다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의 자매지다. 김 교수는 2011년 두 기술의 뿌리가 되는 ‘전자 피부’ 기술을 ‘네이처’와 쌍벽을 이루는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바 있다.

 젊은 나이에 스마트 의료 장비 한 우물만 파는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의사가 아닌 엔지니어로서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도 항상 ‘어렵고 힘든 사람,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자’고 말한다”고 했다. ‘연구를 통한 사랑의 실천’이 그가 이끄는 랩(연구실)의 목표이자 사명이라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현재 ‘스마트 피부’에 자체 전원 공급장치를 달고 제작 공정을 개선해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값싸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글=김한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김대형 교수=1977년생 ▶서울대 응용화학부 졸업(2000년) ▶㈜케이씨텍 선임연구원(2002~2006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재료공학과 박사(2009년) ▶일리노이주립대 박사 후 연구원(2009~2011년)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2011년~) ▶미 전기전자학회(IEEE) 조지스미스상 수상, 2011년 미국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뽑은 ‘세상을 바꿀 젊은 과학자’ 35명(TR35)에 선정

사회발전부문 - 윤태호 만화작가
‘미생’ ‘이끼’ ‘야후’… 비정규직·집단주의 등 사회 문제 드러내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이라도 바둑용어 ‘미생(未生)’의 뜻은 알게 됐다. 바둑판 위에서 살지 죽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돌. ‘우리는 모두 미생이야’라는 말이 위로처럼, 한탄처럼 떠돌았다. 만화가 윤태호(46)의 웹툰 ‘미생’이 우리 사회에 남긴 짙은 흔적이다.

 프로 바둑기사를 꿈꾸던 주인공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한 후 종합상사에 인턴사원으로 들어간다. 2012년 포털 사이트 다음(Daum)에 연재될 때부터 직장생활에 대한 리얼한 묘사로 화제를 모았던 ‘미생’은 2014년 tvN 드라마로 방송된 뒤 일종의 사회현상이 됐다. 드라마 속 장그래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의 ‘장그래법’이 등장했고,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윤태호 작가는 “주인공 이름을 딴 법안이 나왔을 땐 조금 당황스러웠다”면서도 담담했다. “제 작품이 이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의 창작물이 하나의 사회적인 이야기로 발전해 나가면 그것은 이미 창작자의 영역을 벗어난 것이죠.”

 ‘미생’ 이전 작품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를 담아온 그다. 삼풍백화점 붕괴를 소재로 한 ‘야후’나 리더십과 집단주의의 문제를 건드린 스릴러 ‘이끼’ 등이 그랬다. 하지만 그는 “특별히 이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기 위해 작품을 그린 것은 아니다. 한 인간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묘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이 처해 있는 현실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드라마에선 장그래가 정규직 사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도드라졌지만, 그의 원작은 보다 근본적인 물음에 집중했다. “한 사람이 자신이 노력했던 일에서 패배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어떤 일에 뛰어들어 실패를 맛본다면 그것으로 그 인생은 끝이라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는 단지 대기업 정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장그래의 모습보다는 온갖 시련과 인간관계 속에 담금질되는 장그래를 통해 ‘일의 의미’를 묻고 싶었다. “회사원들이 단순히 ‘회사의 노예’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자신의 고유한 삶과 보람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미생’이 많은 이의 공감을 얻은 것은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는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에 대해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격려와 지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현재 다음에 연재 중인 ‘파인’을 마치면 올가을부터는 ‘미생-시즌2’를 시작할 계획이다. 시즌2는 중소기업 직원 장그래를 주인공으로 기업 내 돈의 흐름을 다루는 1부와 비즈니스 실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2부, 장그래의 결혼 이야기를 그린 3부로 나눠 연재된다.

 “그래서 장그래는 누구와 결혼하냐”는 질문엔 “아마 독자들이 상상하는 상대는 아닐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misquick@joongang.co.kr 

◆윤태호=1969년 광주 출생 ▶1998년 허영만, 조운학 문하생으로 만화계 입문 ▶1993년 월간점프 ‘비상착륙’으로 데뷔 ▶주요 작품 ‘춘향별곡’(1997), ‘야후’(1998), ‘수상한 아이들’(1999), ‘로망스’(2001), ‘이끼’(2007), ‘미생’(2012) 등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출판만화대상 등 수상.

문화예술부문 조민석 건축가
통찰력·지식·현실 인식 삼박자 갖춰 … 이제껏 없던 집 지어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날아온 한국관의 황금사자상 수상 낭보는 주인공들이 담담해서 싱거웠다. 한반도 남과 북의 건축을 유럽 한복판에 풀어놓은 대담한 구상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이 최대 수확을 얻었음에도 정작 커미셔너 중 한 사람인 조민석(49)씨는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준비하는 과정이 신나고 재미있었으니 결과는 덤이라는 얘기다.

 건축가 조민석이 일하는 서울 한남동 ‘매스 스터디스(MASS STUDIES)’ 사무실은 면학 열기가 넘친다. 제목 그대로 부피를 지닌 덩어리를 공부하는 집단이다. 그는 “영원히 학생으로 배우고 싶다”고 자주 말하는데, 빈말이 아니었다. 여기서 ‘매스’는 과학적이면서 사회학적인 다양한 생각거리로 뻗어가는 일종의 화두다. 매스 스터디스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면 조민석과 그의 동료들이 생각하는 건축관을 읽을 수 있다. ‘대량생산 문화, 과밀화된 도시적 조건, 그리고 새롭게 등장해 현대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틈새들의 맥락 속에서 건축에 관한 비판적 탐구(…), 다양한 범위의 스케일을 넘나드는 각각의 건축적 프로젝트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비전에 초점’.

 지난 주말, 그는 40시간을 잠 안 자고 매달린 건축 설계 경기를 막 끝낸 참이었다. 그는 “배고파도 썩은 건 안 골랐다”는 표현으로 건축주에 대한 조심스러움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서울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연 첫 개인전 ‘매스 스터디스 건축하기 전/후’에서 그는 현실 인식과 고도의 지식과 미래 통찰력, 이 삼박자를 갖춘 사업가 겸 작가주의 건축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 요즘 그가 즐겁게 작업하는 대전대학교 기숙사도 단순히 600명 학생의 잠자리가 아니라 어머니 품에서 함께 사는 공동체 개념으로 설계했다.

 조민석의 건축은 흔히 바둑과 비교된다. 바둑판의 규칙적인 선 안에서 기사가 자유자재로 놀듯이 그도 제한된 땅과 환경을 가지고 몇 수 이후를 내다보는 힘으로 이제껏 없던 집을 지어낸다. 그는 “건물은 숨길 데가 없다. 죽기살기로 여한 없이 할 거 다해봤다는 건물 몇 채를 남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뚜벅이다. 장롱면허는 잊은 지 오래다. 웬만하면 걷고, 멀면 지하철을 타고, 급하면 택시를 잡는다. 도시 보행자로서 거리 곳곳을 가슴에 담는다. 이제 한국의 도시가 성장의 양보다 질을 따져야 할 때가 왔음을 절감한다. “속도에 대한 집착보다 느리게 사는 여유를 받아들여야 할 시절임을 아프게 느낀다”고 털어놨다. 건축가 조민석이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만들어갈 ‘매스 스터디스’의 미래는 건축의 사회과학적 역할에 방점이 찍힐 듯하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조민석=1966년 서울 출생 ▶연세대 건축공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졸업 ▶렘 쿨하스의 OMA 근무 ▶매스 스터디스(2003~) 대표 ▶주요 수상 뉴욕 건축연맹 주관 ‘젊은 건축가상’(2000), ‘2010 상하이 엑스포-한국관’ 건축부문 은상(2010),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황금사자상(2014) ▶주요 작품 ‘픽셀 하우스’(2003), ‘부티크 모나코’(2008), ‘다음 스페이스닷원’(2012),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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