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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의 시시각각

신뢰의 위기에 빠진 무능한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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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야당이 ‘질 수 없는 선거’에 연거푸 전멸하고 있다. “야권 분열이 최대의 패착” “무난한 공천이 무난한 패배를 불렀다” “헛발질한 선거 전략이 문제” 등등 정치공학적 비판들이 쏟아진다. 그렇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야권연대, 전략공천, 선거 전략만 잘 짜면 이길까? 오히려 근본 문제는 따로 있을지 모른다. 김부겸 전 의원은 “밑바닥 유권자 반응이 심각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여당 사람들이 나쁜 건 아는데, 나라를 거덜 낼 것 같진 않다. 야당은 사람은 괜찮은데 나라를 맡기기는 영 불안하다’는 분위기다.”

 왜 이럴까. 지난달 야당의 ‘정책 엑스포’. 문재인·안철수·박원순·안희정(이하 경칭 생략) 등이 새 노선을 선보였다. 더 이상 복지만으론 어림없다는 반성 끝에 모두 성장을 끌어들였다. 야당은 “중도까지 확장성을 보여준 절반의 성공”이라 자랑했다.

 하지만 이 행사에 참가한 대학교수들의 평가는 다르다. “좋은 말만 잔뜩 끌어 모았을 뿐 알맹이와 논리가 어설펐다”고 입을 모았다. 문재인의 소득 주도 성장론은 어떻게 근로자의 92%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임금을 올리겠느냐에 대한 답이 없다. 최경환 부총리의 ‘소득 주도형 3종 세트’와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안철수의 혁신성장론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도긴개긴이다.

 정치판에는 ‘정치가의 입보다 발을 보라’는 말이 있다. 야당의 고질병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논다는 점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보자. 공무원은 기득권 집단이다. 그럼에도 보수인 새누리당은 개혁의 시늉이라도 냈다. 반면 야당은 공무원 ‘노조’만 감싸고 돌았다. ‘노조’라면 무조건 자기 편으로 여겨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담합’으로 변질시켰다.

 노동시장 개혁도 그러하다. 야당은 근로자의 7.4%인 대기업 정규직 노조 편에 서서 결사반대다. 5배나 많은 근로자가 월 100만~200만원의 저임에 시달리는 현실은 못 본 척한다. 야당의 소득 주도 성장을 위해서도 노동시장 개혁이 우선이다. 귀족노조의 양보 없이는 아무 소용도 없다. 야당은 과연 누구 편일까.

 야당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묘소를 참배한다고 하루아침에 이미지가 세탁되는 게 아니다. 세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관성이 필요하다. 소득세법 개정이나 연말정산 혼선 때 야당은 “맞는 방향”이란 입장에 서서 증세를 주문했어야 했다. 원래 복지를 위한 증세가 전 세계 진보진영의 공통분모다. 그럼에도 야당은 “세금폭탄” “서민 지갑을 지키겠다”며 엉뚱하게 “대통령과 정부가 사과하라”고 우겼다.

 영국에는 “모두를 만족시키겠다는 정책이야말로 최악의 선택”이란 금언이 있다. 그런데도 야당은 서민 지갑을 지키면서 보편적 복지도 해주고, 공무원과 귀족노조까지 살뜰하게 챙긴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나라 망한다”며 국민연금 지급률을 40%로 깎아놓고, 이제는 50%로 올려야겠다는 야당이 유권자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 지금은 야당이 무슨 정책을 내놓아도 먹혀들기 어렵다. 국민은 야당의 메시지보다 야당이라는 메신저 자체에 고개를 돌리는 분위기다.

 최재천 새정치연합 의원은 “정부 여당도 무능하지만 야당은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이 더 무섭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에도 친노와 동교동계는 주군의 그늘에 안주하는 ‘비서정치’에서 헤어나올 기미가 없다. DJ조차 입에 올리기 꺼렸던 ‘호남정치’라는 퇴행적 표현까지 야당에서 흘러나온다.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변명에 기대면 야당의 미래는 없다. 또한 야당의 내공이 약하면 선거 때마다 ‘정권 심판론’의 낡은 레코드를 틀 수밖에 없다.

 야당이 신뢰의 위기에 빠진 느낌이다. 야당이 집권 세력에 실망한 유권자의 희망과 대안이 되지 못하면 냉소와 무기력이 판친다. 이웃 일본을 봐도 그렇다. 온갖 사탕발림으로 2009년 정권을 차지한 민주당이 3년 만에 폭삭 망해 자민당 아베 총리의 독주를 허용했다. 자칫 우리 야당도 닮은꼴이 될지 모른다. 참고로 일본 민주당은 전체 지역구의 절반에도 후보를 내지 못하는 뇌사상태나 다름없다.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