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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혁명’으로 몰던 동성애, 라울 집권 뒤 보는 눈 변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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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15면

아바나 구시가지 중심가의 나른한 오후. 건물마다 화사한 색깔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며 쿠바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쿠바=정승구

쿠바의 색은 다채로우면서 조화롭다. 분홍, 연두, 노랑, 자주, 파랑. 절로 감탄이 나오는 열대 과일 같은 쿠바의 ‘무지개’ 색을 알아보는 데 며칠이 걸렸다. 같은 태양 아래지만 지구 반대편 색깔은 확연히 달랐다.

쿠바에서 본 쿠바의 미래 <4>

아바나 역시 선이 아닌 색으로 그려진 도시다. 여러 빛깔은 숲 속 나무들처럼 홀로 그러나 더불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받쳐주며 뻗어나간다. 그래서 독창적이면서도 화음을 자아낸다. 형형색색의 건축에 사는 쿠바인들 역시 서로를 존중하며 각자 독특한 인생을 추구한다.

내가 머물던 아바나의 식민지 시대 건물 주인의 아들 페페는 남자가 봐도 매력 있는 청년이었다.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의 장점을 고루 이어받아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피부가 고왔다. 곱슬머리를 섬세하게 땋아 올려세우고 옆과 뒤를 밀어 면도날로 무늬를 새긴 헤어스타일은 감각적이었다. 피어싱은 과하지 않았고 컬러 문신 역시 세련되고 절제돼 있었다. 한마디로 스타일리시한 친구였다. 그래서 페페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가 배우 지망생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직업도 없는 백수였다.

페페와 그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 다리아나와 함께 다니는 것은 즐거웠다. 나는 그들을 외국인과 같이 가지 않으면 출입할 수 없는 클럽이나 레스토랑에 데려갔고, 그들은 쿠바의 많은 것을 솔직하게 말해줬다. 현지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그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제대로 읽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우리는 말레콘을 자주 걸었다. 그 긴 방파제를 걷다가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막연한 몽상에 빠지거나, 반대로 돌아앉아 스페인 시대 건물들을 배경으로 달리는 양키 탱크(올드카)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곤 했다.

말레콘에는 밤이면 어김없이 호객꾼들이 나타난다. 코히바 시가를 싸게 판다는 아저씨부터 여자 또는 남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포주들까지.

1 아바나 거리의 ‘밤의 여인’ 히네테라.

불법인 매춘, 외국인 상대로 성행
쿠바에서 매춘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먹고살기 힘들었던 ‘특별 시기’ 때 다시 기승을 부린 성매매는 오늘날까지 외국인을 상대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쿠바에서는 이런 모든 활동을 일컬어 ‘히네테리스모(jineterismo)’라고 한다. 히네테(jinete)는 스페인어로 기수(騎手)를 뜻한다. 즉 히네테리스모의 어원은 말을 탄 사람을 가리킨다. 그래서 쿠바에서는 거리의 여성을 히네테라(jinetera), 남자인 경우 히네테로(jinetero)라고 부른다.

혁명 전후의 양성 평등에 관한 통계는 쿠바 정부의 공보 자료에서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일 만큼 쿠바 정부가 자랑하는 평등주의 정책의 성과는 모두 사실이다. 혁명 이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의사·과학자·법조인의 과반수 이상이 여성이라는 점만 봐도 놀랍다.

그러나 그 사실에는 거론되지 않는 진실이 있다. 쿠바는 너무나 ‘평등’해서 남자·여자·의사·과학자·법조인·야구선수·미용사·무용수 할 것 없이 수입에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입이 월등히 높다. 여러 외국어를 하는 가이드가 아니라도 호텔에서 팁을 챙기는 벨보이가 의사나 과학자보다 많이 번다. 그러니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고부가가치 벌이는 쿠바인에게 유혹적일 수밖에 없다.

매춘의 고객은 주로 쿠바계 미국인들, 스페인과 이탈리아 남자들 그리고 유럽의 중년 여성들이라고 한다. 물론 모든 관계가 아무런 정신적·감정적 교류가 없는 짧은 거래들은 아니다. 장기간 사귀면서 쿠바의 파트너를 도와주는 스폰서 관계도 상당히 많다. 외국인 한 명과 장기 교제를 하는 한 쿠바 여성은 가족 셋을 부양한다고 한다. 잘나가는 히네테라는 의사·변호사·운동선수 또는 무용수 월수입의 두 배 이상을 번다. 단 하룻밤에.
1990년대 말 말레콘에서 매춘 호객 행위가 찍힌 영상이 미국 방송을 타고, 어느 이탈리아 잡지에서는 쿠바를 ‘매춘 천국’으로 소개했다. 쿠바의 국제적 이미지에 예민한 카스트로 정부는 매춘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한번 상자에서 나온 ‘귀신’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히네테라로 의심되는 사람과 같이 있다가는 경찰 검문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매매 당사자들은 ‘침실’까지 나란히 걷지 않고 거리를 두고 걷는다. 포주가 있는 경우에는 무슨 스파이 영화처럼 세 사람이 따로 은밀한 장소로 간다고 하니, 웃기기도 하고 스릴이 넘칠 것 같기도 하다. 만약에 그러다가 검문을 당하면 무조건 친구라고 해야 한다. 혹시 외국인의 스페인어 실력이 떨어지면 히네테라가 언어 또는 살사를 가르쳐주는 과외 선생이라고 해도 된다. 그리고 팁을 적당히 챙겨주면 경찰은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봐준다. 처벌의 기준과 수위는 내국인에게 훨씬 불리하다. 그래서 경찰에게 상습적으로 뜯기는 히네테라와 포주도 많고, 관광객이 찾는 호텔이나 클럽에서 포주 없이 뛰는 프리랜서도 많다고 한다.

2 오래된 차들의 색상도 다채롭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엔 남자만 득실
흥미로운 사실은 쿠바에서는 자본주의 성적 착취의 산물인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법률이 엄격하다. 그래서 이를 소지하기만 해도 반혁명적으로 간주돼 매춘보다 훨씬 더 강한 처벌을 받는다. 그런 면에서 쿠바는 성적으로 ‘순수한’ 섬이었다.

점심을 먹다가 쿠바 영화 ‘딸기와 초콜릿’ 얘기가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페페와 다리아나는 나를 코펠리아에 데리고 갔다. 코펠리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대한 아이스크림 가게로 ‘딸기와 초콜릿’에서 동성애자 주인공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선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쿠바의 LGBT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는 공공장소에서 정체성을 숨겨야 했다. 혁명정부는 60년대 초부터 동성애자들을 ‘반혁명 세력’으로 간주해 사회 곳곳에서 그들을 색출해 강제수용소로 끌고 갔다. 이런 폭력은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완화됐지만 동성애에 대한 쿠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2008년 라울 카스트로가 집권하면서 겨우 LGBT의 권익은 향상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LGBT 인권운동가이자 쿠바 정부의 실세인 라울의 딸 마리엘라 카스트로였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다리아나는 자신이 아는 히네테라에 대한 에피소드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우리 일행을 이상하다는 듯 힐끔거리는 시선이 문득 느껴졌다. 한참 지나서야 나는 그 묘한 분위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다리아나는 그곳에서 유일한 여자였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동안 카페에 여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 얘네들이 뭘 잘못 짚었구나. 아주 심하게’.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들이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해줬다. “페페, 다리아나, 잘 들어. 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야.”

페페와 다리아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마주 봤다.

그날 밤 우리는 베다도에 있는 클럽에 갔다. 손님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바에는 30년 이상의 스카치들이 즐비했고 DJ 역시 감각적이었다.

발레리나 출신인 다리아나는 춤을 잘 췄다. 현란한 조명 사이로 본능에 가까운 그녀의 움직임은 환상적이었다. 그녀에게 추근대는 놈들이 몇 있었지만 페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얼마 후 다리아나가 요염한 여인을 내게 데리고 왔다. 다리아나는 그녀를 ‘미모의 친구’라고 소개했지만 둘이 잘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데이퀴리를 시키며 내게 물었다.

“혹시 이탈리아계예요? 섞였어요?”

“내가? 아니. 전혀. 왜 그렇게 생각하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마피아 아저씨랑 비슷해요. 느낌이.”

“아냐. 몇 년 전에 담배를 끊고 발목을 다쳐서 살이 좀 붙은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별명이 이쑤시개였다고.”

민박집 아들 페페의 고백 “나 게이야”
나중에 알았지만 쿠바에서는 내가 뚱뚱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탈리아계로 보인다는 것 역시 나쁜 뜻이 아니었다.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미모의 친구’는 뭔가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다리아나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내게 웃으며 속삭였다.

“마음에 들어? 꽤 비싼데, 내가 아는 친구니까 네고 잘해줄게.”

내가 어안이 벙벙해하자 다리아나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아까 여자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 그랬지.”

다리아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취향이 아니면 진작 말을 하지.”

다리아나가 설명하자 ‘미모의 친구’는 쿨하게 자리를 떴다.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데 아까부터 다리아나에게 추근대던 외국인이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그 친구야말로 진짜 이탈리아인 같았다. 다리아나와 몇 마디를 주고받던 그는 다리아나의 손에 뭔가를 쥐여주며 손으로 허리를 감았다. 그러자 그녀는 놈에게 진하게 키스를 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두리번거리다 바텐더와 낄낄거리고 있던 페페와 눈이 마주쳤다. 페페는 다리아나와 그 이탈리아 놈을 봤다. 하지만 페페는 의외로 덤덤했다. 당황스러워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리둥절한 내게 페페가 뛰어왔다.

“사실 다리아나는 여자 친구가 아니고 어려서부터 아주 친한 친구예요. 그러니까 일하는 다리아나를 방해하면 안 돼요.”

그제야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간신히 미소를 지었다. 성질 급한 다리아나가 달아오른 이탈리아 놈한테서 떨어지며 끼어들었다.

“페페는 남자를 좋아해요. 그걸 안 지 몇 년 안 됐어요. 하지만 페페는 엄마가 너무 무섭대요.”

다시 이어지던 침묵을 깨며 마마보이 페페가 당당히 커밍아웃했다. “나 게이예요.”

나는 페페의 용기에 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다리아나는 이탈리아 고객과 이미 사라진 뒤였다.

무지개의 색은 일곱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는 이에게는 일곱 색만 보인다.

여행이란 관습에 길들어진 자신을 변화시키는 도전이다. 변화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다. 그러나 낯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구나 새로움을 갈망하지만 낡고 친근한 것들을 버리지 못해 집착한다. 그래서 새로운 색을 보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정승구 영화감독, 작가. 쿠바를 좋아한다.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하버드대에서 정책학을 공부했다. 장편과학소설『영원한 아이』를 썼다.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쓰고 연출하고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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