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방러 취소의 속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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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급작스런 러시아 방문 계획 취소 배경과 관련해 “북한 내부 문제는 아닌것 같다”고 국방부 당국자가 1일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오는 9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전승 70주년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러시아 외교 당국 역시 이같은 계획에 따라 북ㆍ러 정상회담을 준비했다. 그러나 지난달 30일 블라드리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변인인 드미트리 페스코프는 “외교 채널을 통해 김정은 제1위원장이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에 올 수 없게 됐다는 결정을 전달받았다”며 “북한 내부 문제 때문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김정은의 불참 소식을 공개했다. 이 때문에 그가 평양을 비우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북 회담이나 대외 행사를 계획대로 이행할 수 없을때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우리측의 사정에 따라’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며 “러시아도 북한의 이같은 표현을 직역해 북한 내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발 상황이 생겼다기 보다 양해를 구하는 차원에서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사정이 생겨서…”라는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국방부가 내부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한 부분도 이같은 분석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지난달 29일 국회 정보위에서 국정원이 김정은의 방러에 무게를 두고 보고를 한 것 처럼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은 일상적인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행사 열흘전 불참 통보를 한 이유는 뭘까.

우선, 김정은이 애당초 러시아에 갈 생각이 없었을 것으로 북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진희관 인제대(통일학)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의 지도자를 세계에서 유일한 정치인으로 여긴다”며 “여러 정상들이 함께 모이는 행사에 참석할 경우 내부 교육과 달리 전세계 정치인중 한명이 되는 결과여서 격(格)을 떨어뜨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정은 집권이후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반면, 유일한 외교적 출구인 러시아의 초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참석의사를 보이다 더 늦기 전에 불참을 통보했다는 얘기다. 실제 북한은 각종 국제회의나 행사때 헌법상 대외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참석시키곤 했다.

또 사전 조율과정에서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 들여지지 않자 방러 계획을 취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정보 소식통은 “북한 주민들은 각종 장사 등으로 경제적으로 좋아지고 있는 반면 북한 정부는 마식령 스키장 건설과 평양시 현대화 사업등에 많은 외화를 투자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김정은의 참석 대가로 대북 지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계획을 바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때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던 푸틴 대통령에게 김정은이 많은 의지를 하고 경제적 지원도 기대했지만 최근 국제 원유가 폭락등으로 러시아의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원과 지원약속에 어려움을 겪자 일종의 시위성 선택을 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의리를 중요시 하지만 나름 대단히 실리를 챙기는 실용주의 외교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불만 내지 지원을 약속하거나, 기존의 지원약속을 이행하라는 독촉성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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