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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가서 "전국~노래자랑!" 외치면 소원이 없겠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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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나는 딴따라다』엔 송해의 웃음과 눈물이 담겼다. [사진작가 조세용]

현역 최고령 방송인 송해(88)는 지난 4월 27일, 우리 나이로 여든 아홉 생일을 맞았다. 이런 그에게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망설임 없는 답변이 돌아온다. “노래자랑하면서 전국을, 해외를 다녔는데 2003년 평양에서 시원찮게 한 게 마음에 걸려요. 출연자들하고 대화를 못하게 했거든요. 제 고향이 황해도 재령입니다. 연백평야, 나무리벌이라고 기름진 옥토에요. 거기서 ‘전국노래자랑~송해, 고향에 왔습니다!’하고 외친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30일 열린 평전 『나는 딴따라다』 출간기념회에서 한 말이다.

 단국대 오민석(57·영문학) 교수가 쓴 이 평전은 국내 최장수 TV프로 ‘전국노래자랑’(KBS1)의 진행자이자 남녀노소 모르는 이가 없는 정상의 방송인 송해의 지난 삶과 1년 가까이 그를 따라다니며 목격한 모습이 담겼다.

해주음악전문학교 성악부에 진학할 때부터 예인을 꿈꾼 청년, 6·25 전쟁 당시 어머니를 비롯한 온가족과 생이별한 실향민, 혈혈단신 삶을 헤쳐가며 무대에 선 악극단원, 일감이 끓겨 벼랑에 내몰린 젊은 가장, 방송 진행자로 인기를 누리던 와중에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버지, 출연자들에게는 더없이 살갑고 소탈하지만 스태프들을 혼낼 때는 무섭기 짝이 없는 방송인 등 그의 여러 모습에서 ‘웃음’만 아니라 ‘눈물’이 드러난다.

 ‘송해 광팬’을 자처하는 오 교수가 평전을 쓰는 행운을 누리게 된 계기는 서울 낙원동 대중목욕탕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다. 송해가 단골인 줄 모르고 이 곳을 찾았다 그와 마주쳤고, 오 교수는 벌거벗은 채로 마침 출간된 자신의 시집까지 건넸다. 오 교수는 “송해 선생의 격의없고 소탈한 태도 이면에는 뼈아픈 상처,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이 있다”면서 “그의 개인적인 상처는 우리 현대사, 대중문화사와 고스란히 겹친다”고 말했다.

 평전 제목의 ‘딴따라’는 한때 연예인을 비하하고 천시하는 의미였다. 헌데 송해는 지난해 은관문화훈장을 받으며 스스로 “나는 딴따라”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지금 평전을 낸 데 대해 “아흔을 채우고 싶진 않았다”며 “올해는 마침 광복 70주년이자, 저에게는 분단 70주년”이라고 말을 이었다. “사람 사는 게 즐거움뿐은 아니겠지만 수많은 고비를 넘기며 위로 받지 못하고, 위로 해주지 못하면서 고독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전국노래자랑’에 오는 분들도 저마다 다 사연이 있을텐데, 내 경험을 전해드리면 어떨까 싶었어요.”

 고향 얘기를 할 때는 눈시울을 적셨지만, 늘 그랬듯 웃음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국노래자랑’ 후임자요? 예전에 후배들 열 댓 명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알아서들 뽑아보라고 했어요. 제일 선임인 이상벽씨가 ‘접니다, 언제쯤 물려주실건가요’ 하길래, 축하한다며 귀에 대고 ‘오십년 후’라고 했죠.”

“제 평전을 영화로 만든다면 남자 주인공은 누가 좋냐구요? 제가 하죠. (영화에서)단역은 많이 했는데, 주연은 못해서 욕심이 납니다. 아니면 김수현씨죠. 여배우는 전지현씨가 좋겠네요.”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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