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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기자의 교육카페] 'ASEM 교육장관회의' 화두는 청년실업 … 교과목 매진, 이젠 취업 보장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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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성탁 기자
교육팀장

발트 3국 중 하나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지난 27~28일(현지시간)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교육장관회의’를 지켜봤습니다. 아시아 21개국, 유럽 30개국의 교육정책 책임자가 한자리에 모인 회의에서 가장 자주 거론된 것은 취업 문제였습니다.

 한국에선 수험생이 수년간 대입 준비에 매달려 이름 있는 대학을 나오면 고임금 직장을 잡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렇지만 최근엔 대기업의 채용 인원이 줄고 이른바 ‘SKY대(서울·고려·연세대)’를 나와도 취업난을 겪습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통계국이 발표한 2013년 취업률은 68.3%로, 10년래 최저 수준이었습니다. 세계 각 정부가 취업률 높이기에 매달리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해결책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술 발달이 빠르고 기업이 세계화되면서 일자리에선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1996년부터 2008년까지 가게 점원 등 저임금 일자리와 기업 고위 임원 등 고숙련 일자리만 늘고 대다수가 종사하는 중간 숙련도의 일자리는 대폭 줄었습니다. 수명이 늘면서 나이가 들어도 일자리가 필요해지는 등 인구 고령화도 취업시장에 과제를 던집니다.

 아시아와 유럽 교육장관들은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시급한 과제부터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학과 기업이 손잡는 산학 협력을 강화하고, 직업교육을 포함해 평생에 걸쳐 학습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을 공동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회의의 의장인 마리테 세일레 라트비아 교육과학부 장관은 의장 선언문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대학과 기업이 협력해 혁신을 일으켜 줘야 해결할 수 있다. 대졸자의 취업률을 높이고 창업정신을 배양하기 위해 대학과 기업이 밀접하게 협력하는 틀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기업이 대학생들에게 일자리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 교육과정을 짤 때 산업계 의견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브루나이·벨기에·독일·인도네시아·태국은 각 나라 대학생들을 교환하며 3년간 해법을 모색하는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자동차·반도체·조선·에너지 분야에까지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장인을 길러내는 독일·스위스식 도제교육 모델과 대학에서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고교·전문대 통합교육도 올해 선을 보입니다. 산업계가 참여해 마련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교육하고 이수자를 평가해 자격을 인정해 주는 제도도 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있습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7일 티보르 너브러치치 EU 집행위원과의 회담에서 “중학생들이 일자리를 찾을 때쯤이면 현재 직업의 절반가량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직업 구하기에서 벗어나 직업을 창조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U 측도 취업이 안정적인 독일에서조차 최근엔 일자리가 줄고 있다며 공감을 표했습니다. 세계 교육계의 변화 움직임이 한국 학부모와 학생, 대학 관계자와 교사들에게 ‘남의 얘기’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회의는 한국에 밤늦게까지 교과목 공부에만 매달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경고음을 전해 주는 것 같습니다.

김성탁 교육팀장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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