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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TALK] 좋은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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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회가 인정하는 성취가 진짜 너인가
유한한 삶, 다른 누굴 위해 살지 마오
나로 사는 것보다 가치있는 건 없어

‘내가 왜 이 별에 왔는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남보다 잘살기 위해 공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살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고등학교 때였다. 고1 때 우등생 소릴 들었지만 고3 성적은 형편없었다. 억지로 대학에 입학했고 2학년 때 문과 계열 동기 260명 중 그를 포함해 단 3명이 택한 철학과를 갔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얘기다. 최 교수는 최근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내고, 21세기 융합형 인재 육성을 목표로 세워진 건명원(建明苑) 초대원장을 맡았다. 철학에서 인생의 길을 찾은 그를 지난 20일 만났다.

-동양철학을 택한 이유는.

“원래 서양철학에서도 칸트를 공부하려 했다. 칸트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어느 날 공부하다가 지쳐서 내 책꽂이에 있던 『장자』를 꺼내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칸트보다 장자가 주는 울림, 감동이 더 컸다. 재밌더라. 미간 찌푸리면서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공부보다 내가 재밌어서 (책이라는) 놀이감을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공부가 내게 진짜 공부가 되겠다 싶었다. 그때가 4학년 졸업을 막 앞둔 상태였다. 심심풀이로 읽은 게 본업이 된 셈이다.”

-우리에게 철학이 왜 필요한가.

“우리가 박물관에 가면 유물 하나하나를 보고 감탄한다. 그러나 진짜 탁월한 사람은 유물 하나하나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흐름을 읽는다. 유물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지만 이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읽혀질 뿐이다. 이를 읽는 능력을 바로 지혜·지성이라 부른다. 철학은 지성을 발휘해 인간이 세계를 보는 가장 탁월한 시선인 거다.”

-학생들은 인문학과를 기피하는데, 사회에선 인문학 열풍이다.

“사회의 인문학 열풍을 주도하는 이들은 기업인이다. 변화무쌍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다. 다른 나라 제품 따라 만들어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제일 먼저 느낀 이들이다.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거기에 맞게 반응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인간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포착하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사회는 바로 이 인문학적 사고 능력을 지닌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반면 대학의 인문학 교육은 인문학적 지식의 습득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이 지식을 토대로 인문학적 사고 능력을 키우는데 중점을 둬야 하는데 말이다. 학생들이 인문학 지식만 있을 뿐 인문학적 사고 능력이 없으니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가 되지 못한다. 인문학의 위기가 아니라 인문학자의 위기다.”

-당신은 책에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바라는 일, 좋은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택한 일이 어떤 성취나 성공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성공이라는 관념으로 자기 꿈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채우려는 일보다 그런 삶을 살았을 때 풍요롭지 않거나 높은 지위에 올라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한다. 비겁한 태도다. 삶의 독립적 주체로 사는 기초가 무너진 상태다.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취는 본래의 자기가 아니지 않나. 이를 걱정하는 젊은이들은 이미 너무 늙어버린 거다.”

-최근 우리 사회에 혼란스러운 일이 많다.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네가 너냐’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사람들은 역사의 책임자로 등장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답하지 않고 기존의 것에 자신의 삶을 맞추려는 사람들은 비판자로 남는다. 이런 사람들은 교통 질서에 대해서도 ‘우리가 아직 후진국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욕을 하지만 정작 자기는 지키지 않는다. 동창회에 가보면 청탁 문화가 문제라고들 말한다. 그래 놓고 청탁 전화를 한다. 왜냐하면 자아가 분리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 부정부패 때문에 난리지 않나. 윤리 규정으로 절대 못 막는다. 본인 스스로 뇌물 받는 일이 내 자존을 해치는 일이다, 나를 나로 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느낌이 없으면 뇌물을 받게 된다.”

-두 아들에게는 어떤 얘기를 하나.

“예전 일 하나 들려 주겠다. 몇 년 전, 대학 다니던 큰아들과 고등학생이던 둘째 아들이 e메일을 보내왔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시는데 공부를 잘 안해 죄송하고 앞으로는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이에 답장을 썼다. ‘나는 누구를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을 위해서 일한다. 너희들도 너희 자신을 위해서만 무엇을 해라. 그리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라. 그것만 기대한다’고 했다. 난 되도록 나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유한한 삶 속에서 내가 나로 살다가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일이 있겠는가.”

-나에게 맞는 철학책을 찾는 방법은.

 “자신을 감동시키는 철학책이 좋은 책 아니겠나. 관심 가는 분야부터 읽어라. 다만 너무 전문적인 내용보다는 이야기하듯 풀어놓은 책을 먼저 보는 게 좋다. 철학과 친해지는 게 우선 필요하다. 최근 쉬운 인문학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는데 좋은 현상이라 본다. 사람들이 철학에 접근하려는 욕구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의미지 않나.”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최진석 교수가 추천하는 철학 도서 4권

①『철학적 사유와 진리에 대하여』
김형효, 청계

철학은 지성의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사유 활동이다. 이 책에는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철학 사이에 벽이 없다. 하나의 사유 대상으로 동시에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사유의 유기성이 작동하여 바로 한국의 현실과 한국의 사상으로 연결된다. 우리의 사상이 어떻게 창조되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독립적 사유의 한 모범을 만나게 된다.

②『둥지의 철학』
박이문, 소나무

철학이 자생적이지 않고 그 높이를 자랑할 수 있을까? 그 높이에 선 박이문은 철학에서 자생성과 독창성이 핵심임을 말해준다. 시적인 상상력이 발휘되어 기술된 이 책은 예술적인 솜씨가 가미되어 독창성이 발휘될 때 등장하는 용기와 율동까지 보여준다. ‘존재 - 의미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개념을 등장시켜 철학적 난제들을 새롭게 검토한다.

③『다산 정약용 평전』
박석무, 민음사

다산은 낡고 병든 당시 조선을 새롭게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인들 병들지 않은 게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는 다산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때다. 철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그냥 창백한 사유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책임성을 다시 다져야 할 일이다.

④『철학과 인문적 상상력』
김상환, 문학과지성사

독자적인 철학 세계를 펼쳐 보이려는 시도를 만나는 일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새로운 정신을 찾으려는 노력이 빛난다. 상상력이 고갈된 인문학은 바로 훈고학일 뿐이다. 이 책은 상상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삼아 다루면서 우리를 창의의 기운이 넘치는 곳으로 끌고 간다. 새로운 인문적 사유를 시도했는데 저자의 독립적 사유가 일정한 성취를 일궜다.

글=최진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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